<집수리 마음수리 3>
오전작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자신을 원룸건물주라고 소개한 남자는 싱크대수전을 풀기 위해 공구를 이것저것 구입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전이 풀리지 않는데 이것만 풀어주면 자신이 수전교체하는 것을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웬만한 수전들은 자신이 갈았는데 이 번 거는 풀리지 않아 한참을 고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용을 물어왔다. 그는 전체비용의 2/5만 줄 수 있으니 수전 푸는 것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은 손재주가 없을 확률이 높다. 공구도 꼭 필요한 공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엇비슷한 공구를 준비했을 경우가 많다. 형태는 같아도 사용할 수 없는 공구라는 뜻이다. 돈은 어만데 쓰고 정작 중요한 곳에서 절감하려는 독특한 셈법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주차장소가 협소한 원룸건물은 1층엔 헤어숍이 있었다. 차 2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은 이미 차들이 들어차 있어 2중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날이 무더워 벌써부터 땀이 옷을 뚫고 배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다음 작업일정을 위해선 신속하게 처리하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 물에 관련된 일만 아니었다면 오지 말았어야 했을 건인데... 엊그제 수리한 곳에서 물난리가 나서 1500만 원의 손해를 끼쳐 배상해야 한다는 어느 분의 씁쓸한 사연이 발걸음을 옮기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전교체가 쉬워 보여도 꼼꼼하지 않으면 큰 물피해를 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원룸 3층에 올라와 싱크대 수전을 확인해 보니 수전이 고정되어 있는 나사산(탭)에 심하게 부식이 되어있었다. 이럴 경우 풀어낸다고 해도 나사산의 몸체가 길어 그 부식된 전체 길이만큼 풀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럴 경우 풀기보다는 절단해 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작업은 결합되어 있는 너트의 한쪽 부위를 절단하고 맞은편 180도 되는 부위를 잘라내면 그대로 떨어진다. 수전을 절단해 내고 주위를 보니 의뢰인이 준비해 놓은 공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팬치, 드라이버, 몽키스페너 등 예상했던 대로 규격에 맞지 않아 이 수전을 풀기에는 힘들어 보이는 공구들이다. 의뢰인은 손재주뿐 아니라 보는 눈썰미도 부족해 보였다.
의뢰인이 한마디 던졌다. 1만 원을 더 줄 테니 나머지 작업인 수전을 달아 달라는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상비용의 3/5를 지불하겠다는 독특한 셈법에 웃음이 나왔다. 의뢰인은 부족한 손재주와 눈썰미뿐 아니라 독특한 셈법마저 가지고 있는 듯했다. 긴급하게 처리해 주는 일들은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뿐만이 아니었다. 싱크대 수전의 붉은색 호스는 온수 쪽에, 푸른색을 띠는 호스는 냉수에 연결해야 한다. 싱크대 아래 수도는 대부분이 온수는 좌측에 냉수는 우측에 위치해 있다. 의뢰인은 자신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좌측에 파란색의 호스를 연결하고 우측에 빨간색의 호스를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 좌측은 온수, 우측은 냉수라고 설명을 해줘도 듣지를 않았다. 의뢰인의 요청대로 수전의 호스를 연결하고 나서 마지막 누수 테스트를 하기 위해 수전의 물을 틀었다. 수전의 손잡이를 우측으로 돌리면 냉수가 나와야 한다. 과연 냉수가 나왔을까? 예석하게도 온수가 나왔다. 이제 할 일은... 그렇다. 연결된 온수와 냉수의 호스를 풀어 바꿔야 한다.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작업을 했기에 내가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할 말은 없겠지만 불편함은 원룸 임차인 몫일 것이다. 우리 집은 엿 같게도 온수와 냉수가 거꾸로 나와!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온수와 냉수의 호스를 풀어 바꿔서 작업을 하고 누수테스트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은 미안한 기색도 비용도 변함이 없었다.
나는 말버릇처럼 돈 쓰고 욕먹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한다. 욕먹지 말아야 할 짓은 돈뿐만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게 적당히 하면 될 일이다. 이 적당히가 애매모호하게 기준이 다른 게 문제인 것이다. 누구는 같은 일을 두고 적당하다고도 하고 부족하다고도 하고 과하다고도 한다. 그래서 기준이 되는 상식이 필요할 듯한데 이 상식 또한 해석하는 사람의 잣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편적 상식의 가치를 화폐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돈이 공정과 상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보편적 상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특한 셈법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돈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경지도 존재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