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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좋아요

<집수리 마음수리 3>

by 세공업자

현관 출입문에 디지털도어록에 이상이 있다는 의뢰를 받고 세대에 방문했었다. 의뢰인은 상가주택 2층에 위치한 세대에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수리를 요청한 상태였다. 그래도 도착 후 혹시나 안에 누가 있을까 싶어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다가 인기척이 없어 비번을 누르고 문이 열었다. 문제가 되는 현관문을 수리하면 되는 일이라 안에 들어갈 일이 전혀 없었다. 출입문의 디지털도어록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안에서 사람이 보인다. 앗! 내가 잘못 보았나! 싶었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도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사람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면 왜 밖을 확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를 하고 있는데 또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아마도 수리하는 소리에 밖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했더니 "네"라며 짧게 대답하는 사람은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생긴 것이 영락없는 외국인이었다. 한국말이 서툰지 그는 다시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수리를 마칠 때까지 그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야 했다.


며칠이 지나 또 그 세대에서 수리요청이 들어왔다. 거실등과 방등이 어두우니 LED등으로 교체해 줄 것과 콘센트가 망가져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빠른 수리를 요청했다. 신속하게 수리해 주면 되겠다 싶어 그 세대에 또 방문했다. 세대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외국인들이 있었고 이곳이 외국인 근로자 숙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눌하게 영어로 어디서 왔는지 물으며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려 했다.


"웨얼아유 프롬?"

"엉?"

"캔유스피킹잉글리시?"

"엉?"

"한국말은 할 수 있나요?"

"아~ 조금!"

"나는 안기사~ 이름이 뭐예요?"

"아~무시!"

"무쉬?"

"M 모, S 시!"

"아~모시!"

그제야 그가 활짝 웃었다. 거실엔 에어컨이 있어 시원했지만 각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일반가정에도 각방에 에어컨은 있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 무지막지한 더위에 콘센트가 안되어 방안에 선풍기를 틀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모시? 이거 언제부터 안되었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콘센트를 가리켰다. 모시는 "언제?" 하며 스마트폰을 검색하더니 손바닥이 자신을 향하게 손가락을 펼쳐든다. 엄지손가락부터 하나하나 짚어 새끼손가락까지 오더니 "이렇게" 5일이라고 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는 한국! 모시는 어디?"

"어~반그라데쉬!"

"반구~어디?"

"반그라데쉬"

"아~방글리데시!"

"아~ 맞아 맞아"

모시가 환하게 웃었다.


모시가 살고 있던 집은 깔끔했지만 방 2개의 제일 자주 쓰는 콘센트 두 개는 깨지고 망가져 있었다. 콘센트를 갈고 있는데 모시가 "괜찮아?" 한다. 이 "괜찮아"는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 같아서 "잘되고 있어!"로 대답했더니 모시가 "좋아"하며 웃는다. 나는 콘센트를 교체하고 전등을 교체하며 거실과 방을 이리저리 이동했다.


잠시 후 지글지글 고기 볶는 소리가 나며 카레향이 짙게 풍겨왔다. 나는 모시한테 나의 코를 가리키며 "맛있는 냄새!" 했더니 모시는 "방글라데시 카레음식"이라며 웃었다. 모시는 음식을 조리하면서도 방글라데시어로 전화를 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는 듯했다. 모시는 한국에 와 있으면서도 어둡거나 힘든 기색보다는 자유롭고 당당하며 밝았다. 나와의 짧은 대화도 스마트폰을 검색해 가며 자연스럽고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때 코미디 소제로 외국인 노동자역이 등장하곤 했던 적이 있었다. 어눌한 한국말로 불합리한 상황에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내곤 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생각하면 웃으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참이 지난 요즘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생활환경이 종종 뉴스로 접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폭염에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거나 벽돌과 함께 묶여 지게차에 매달려 가는 영상의 뉴스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정도면 심각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근로자들은 자국에서는 나름 뛰어난 인재들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시처럼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귀한 자식이기도 한 것이다.


모시의 숙소에 방문해서 수리를 해주는 짧은 시간 동안 본모습은 숙소도 청결했고 집안환경도 여느 한국인 가정 못지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어둡지 않았고 밝고 당당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는 점이다. 모시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여러 이야기는 오고 가지 않았지만 직장에서도 같은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드니 '사장님 나빠요' 보다는 '사장님 좋아요'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아무쪼록 모시와 동료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 별 탈 없이 일하다 건강한 모습으로 고국에 돌아가길 바란다.


폐자재를 수거해서 현관문을 나오는 내게 모시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당신의 친절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시 잘 지내고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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