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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라도 괜찮아

<집수리 마음수리 3>

by 세공업자

요즘 내 몸은 더위와의 전쟁 중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뭘 먹어도 허하고 뭘 마셔서 목이 탄다. 야외작업은 그야말로 타는 지옥에 온 듯해 벌을 받는 느낌이 든다. 밉살스럽게도 저녁 7시에 작업을 해달라는 의뢰인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지는 경우가 다 있다니 뜨거운 태양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집수리 작업은 작업도 중요하지만 작업 사진을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 SNS를 통해 올려놓는 작업일지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보고 의뢰를 하기에 딱 적합한 상황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량이 큰 휴대폰이 필수이고 그 안엔 이제껏 작업해 놓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언제든 사진을 통해 경험을 뽑아 작업일지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작업을 나가기 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요즘은 알아서 가볍게 체조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게 된다.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앗!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었다. 이런... 그전에는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기 전에는 항상 조짐이 있었다. 전원이 반복적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거나 멈춘 상태에서 다시 전원을 누르면 켜졌었다. 이렇게 되면 연락처와 사진등 들어있던 데이터를 전부 백업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 조짐 없이 갑작스럽게 멈추었다ㅠ. 의뢰인과 약속은 어떻게 지킨단 말인가! 단지의 동은 기억이 나는데 몇 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ㅠ 다행히도 의뢰인이 외출에서 돌아오는 중이라 1층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 어느 중년여성분이 차에서 내리셨다.


"혹시 집수리?"

"아 네! 맞아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의뢰인과 만나 집수리 견적을 상의하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A/S센터에 들렀다. 휴대폰을 살리는 방법은 첫 번째,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보는 것과 두 번째, 초기화를 하는 것과(이렇게 되면 사진파일과 전화번호까지 지워지게 된다) 세 번째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유심을 네비폰으로 쓰던 7년 된 휴대폰으로 옮겨놓고 먹통이 된 휴대폰을 맡겼다. 다행히 다음 의뢰집이 A/S센터에서 멀지 않았고 단순한 작업이라 휴대폰을 고치는 동안 다녀오기로 했다.


작업을 하는 중에 A/S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첫 번째 방법을 해보았는데 휴대폰이 안 켜진다는 것이다. 이런, 두 번째 방법을 놓고 잠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초기화를 했는데도 휴대폰이 커지지 않는다면... 2년여 가까이 쌓여있던 사진이며 연락처며 전부 다 날아가고 휴대폰도 못 살리게 되는데 이를 어쩐담. 잠깐 고민을 하다 자료들은 또 쌓으면 되니 휴대폰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꼭 살려주세요"


휴대폰 A/S센터의 답변은 그러고도 휴대폰을 수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두뇌에 해당하는 메인보드를 갈아야 하는데 수리비용이 자그마치 수리해야 할 휴대폰을 중고로 2개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초기화를 하지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휴대폰을 수리할 금액으로 2년이나 젊은 휴대폰을 중고로 구입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을... 집수리는 하는데 휴대폰 수리는 못한다는 것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2년 가까이 기록했던 데이터들이 한순간에 내 손안에 백치가 되어 돌아왔다. 연락처라도 구글에 동기화해 놓을 것을...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는 단골들의 전화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분은 "전대요 이거 해 줄 수 있을까요?" 하신다. 나는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저예요 저! 아무개요"

"아~ 안녕하세요"

그래도 소용없다. 상세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야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은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안에 있던 인맥이며 나눴던 대화며 집수리 노하우등 데이터들이 싹 지워지니 머리가 좀 홀가분해진 느낌이 든다. 며 칠 지나지 않아 또 차곡차곡 속세의 때가 쌓여 가겠지만 당장은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어느 대화방은 복원하기를 누르면 그대로 살아나기는 하지만...


가끔은 주변을 청소하듯 휴대폰에 쌓여있는 데이터도 연락처도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도 숨을 잘 내쉬어야 들어오는 숨이 깊어져 숨통이 트이듯 말이다. 잠깐이었지만 휴대폰 없는 세상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휴대폰도 쓸데없는 데이터로 가득 차 블랙아웃 되었을까? 날씨도 더웠으니 다운될 만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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