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3>
오늘은 토요일, 한 달 전부터에 예약되어 있던 카페 조명등을 갈아주는 일로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상가의 1층은 대부분 높이가 제법 높은 편이다. 조명들을 갈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하기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시 내려오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되기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생각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싱크대 아래 수도가 터졌다고 했다. 다급한 여성은 언제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하필 싱크대 아래 수도가 터졌을까? 아파트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누수 관련 일일 것이다. 물은 어디든 미세한 틈을 파고들고 뉴턴의 사과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자칫 아래층 천장에 누수된 물이 떨어져 피해를 입힌다면 많은 금액의 사과값을 보상해줘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흰둥이 반려견과 검둥이 반려견이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목청이 어찌나 크던지 그 위세가 가히 대단했다. 의뢰인은 시끄럽다며 따님으로 보이는 분께 어서 얘네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따님은 돌연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강아지들만 계속해서 짖어대고 있었다. 강아지들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짖던 강아지들이 낯선 사람의 냄새를 충분히 맡으면 좀 조용해질까 싶어서였다. 어라! 효과가 있었다. 강아지들이 냄새를 맡다 싫증이 났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문제가 되는 주방수전을 살펴보았다. 수전에서 물이 나오는 헤드는 빠져 있었고 대부분 오른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는 수돗물을 틀고 잠그는 손잡이가 왼쪽으로 향해 있었다. 의뢰인께 왼손잡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수전을 쓰면서 불편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어쩐지 불편했다고 답한다. 그럼 이 수전을 누가 설치한 것이냐고 물으니 지인이 해준 것이라고만 답한다. 수전이 연결되어 있는 싱크대 아래를 열어보았다. 수도와 연결되어 있는 호스는 비비 꼬여있었고 무게추도 너무 짧게 달려있었다. 도대체 그 지인이라는 사람은 누구길래 이리도 형편없이 수전을 연결해 주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마침그때 외출했던 아저씨가 들어왔다. 혹시 이 댁 아저씨가 설치한 것은 아닐까! 궁금한 마음에 의뢰인께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아저씨가 설치하셨나요?" 의뢰인은 아니라고 한다. 아저씨는 내게 수전을 고치지 못하면 다른 것으로 바꿔서라도 달아달라고 하신다. 이런 반응으로 봤을 때도 아저씨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 지인이 누구길래 이렇게 엉성하게 수전을 설치하고 물이 터져 큰일을 자초했을까! 의문이 드는 순간 보이지 않던 따님이 떠올랐다. "혹시... 남자친구?" 의뢰인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한다.
그제야 수전을 수리하기 위해 댁에 들어서자마자 휑하니 사라진 따님이 왜 그랬을까 의문이 풀리는 듯싶었다. 주방수전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도 조금은 가늠이 되는 듯싶었다. 남자친구가 점수를 따기 위해 정성 들여 설치한 수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를 어쩐다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비장하게"이 수전을 잘 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했더니 의뢰인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비장하게"살릴 수 있겠어요?" 하신다. "일단은 해보겠습니다!" 했다.
좌우가 바뀐 수전을 원상태로 돌리고 수도와 연결된 꼬인 호스는 잘 풀어 서로 엉키지 않게 정리했다. 문제가 된 수전 헤드는 부품이 하나 빠진 것을 찾을 수 없었지만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잘 조정하여 누수가 되지 않도록 단단히 조립해 놓았다. 조치가 된 후 물을 틀어 사용해 보니 더 이상 누수는 되지 않았다. 의뢰인께 혹시나 이상일 생길 수 있으니 사용전후 꼭 확인을 해야 한다고 누누이 당부했더니 잘 살펴보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따님의 남자친구가 설치한 수전을 잘 사수한 것만으로도 오늘 미션은 대성공인 듯싶었다.
수리를 마치고 댁을 나오려는 순간 방안에 있던 따님이 쪼르륵 나오더니 주방 쪽으로 향했다. 어느새 달려온 흰둥이와 검둥이도 요란스럽게 짖기 시작했다. 앗! 정신없어~, 막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오려는 찰나 따님이 달려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뭘까? 얼떨결에 받아 들었는데 다름 아닌 삶은 달걀 두 개가 들려있었다. 주방수전을 살려낸 고마움의 표시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