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3>
집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단장을 하게 된다. 그런 방법 중에 하나는 욕실 전체를 뜯어고치거나 집안 전체 필름을 다시 하거나 도배를 다시 하거나 등등 크게 단장하는 인테리어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낡은 변기와 세면대를 바꾸거나 낡은 몰딩만 교체하거나 하는 필요에 따라 경제적으로 부분 부분 교체하는 수리를 하기도 한다.
의뢰인은 매입한 아파트의 낡은 변기와 세면대, 욕실장을 교체해 달라고 하셨다. 욕실의 도기들은 전 거주자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상태에 따라서 새로 들어오는 거주가 계속사용할지 결정하기도 한다. 이번경우는 변기와 세면대, 욕실장들이 너무 낡아 도기에 금이 가거나 벗겨진 경우에 속한다. 이런 경우는 청소를 해도 깔끔하고 청결하게 되지 않는다. 교체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위생적일 것이다.
변기와 세면대는 무게가 상당하다. 무게 때문이라도 들고 내리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도기에다가 욕실바닥 또한 타일인지라 자칫 작은 충격에도 상하기 십상이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작업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중노동인 셈이다. 낡은 변기를 들어냈다. 변기를 뒤집고 돌려 안에 들어있는 물을 최대한 빼내야 옮길 때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본체를 들어내서 현관입구 손수레에 실어놓고 그 위에 물통을 들어다 올려놓았다. 이제는 변기자리를 잘 청소하고 새로운 변기를 앉히면 되는 일이다.
"아~악!" 일을 도와주던 아내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여보" 나는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났다는 생각에 다급히 물었다. 아내는 "이게 뭐야! 이런 게 여기에 있어?" 아내의 놀란 소리에 뛰어나가보았다. 아내는 내가 뒤집어서 올려놓은 변기 물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똥이라도 묻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보라고!"
"뭔데? 이거!"
아내를 놀라게 한 것은 아주 작고 가느다란 종이에 또박또박 적어놓은 한 문장이었다. 펜은 칼보다도 강하다고 하더니 그 작고 가느다란 종이에 적어놓은 한 문장은 예리한 흉기보다도 날카롭게 날이 서 있어 보였다. 그것도 투명테이프로 구김 없이 떨어지지 않게 틀어짐 없이 정성껏 붙여놓았다. 아내를 놀라게 한 그 문장은
"000 막내딸 교통사고로 평생 장애 앓다가 뒤져라"였다. 우리는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이런 글을 써서 그것도 변기뒤에 붙여놓았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생각과 추측들을 이야기하다 내린 결론은 원한을 품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과 그 한을 저렇게라도 해서 저주하고 풀어야만 했던 심정을 헤아려 보려고 했다. 우리는 그 저주가 담긴 부적의 검은 봉인을 풀어내고 밝게 해원상생으로 이끌어 내는 한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계를 맺는 동안 좋던 안 좋던 어떤 사연이 있었든 간에 헤어질 땐 아름다운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진리이지만 그렇게 하기엔 매우 어렵고 서툰 일이다. 머물던 자리를 떠날 때 아름답게 정리하듯 서로 머물던 마음 또한 아름답게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그 감정은 서로의 마음에 오래도록 간직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 잘못된 오해로 인한 원한과 살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반사"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장난 삼아 "반사"라는 말을 하며 웃기도 하지만 이 말만큼 잘 표현된 단어 또한 없는 것 같다.
변기가 있던 자리를 한을 풀어내듯 더욱 깨끗하게 청소해 내었다. 그리곤 하얗게 빛이 나는 새로운 변기를 정성껏 앉혔다. 이것으로 살을 없애고 모든 원흉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폐변기를 수레에 싣고 차로 옮겨 실고 다시 폐기장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는 동안 서슬 퍼런 그 종이는 쓸리고 물에 불고 했는지 형태도 글자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헤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