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3>
작업이 진행되려면 의뢰인과 시간약속을 해야 한다. 요즘 대세는 의뢰인들이 자신의 시간에 맞춰줄 것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인들은 일과 외 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 원하는 경우도 있고 주말에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소음이 적은 소수의 작업들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힘든 경우가 많다. 예약이 성사되는 결정적 요인은 상세주소에 있다. 작업시간과 상세주소를 통보받으면 약속이 정해지고 작업준비를 해서 방문하여 진행하면 된다. 토요일 점심시간 이후 시간을 정하자고 하던 의뢰인은 시간을 정해 알렸으나 문자에 답장도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약속시간이 1시간쯤 지났을까! 토요일이라 일찍 일을 마무리 하려던 차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의뢰인은 거실 천장에 있던 몰딩이 떨어져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한다. 본인이 조치할 수 있을까 싶어 밀어 올려붙여보려 했으나 손을 대면 댈수록 더 쳐지고 떨어진다고 한다. 문자메시지로 보내온 사진 속 상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 바로 조치할 수 있을 듯싶어 조수인 와이프를 대동하여 방문을 했다. 천장작업은 사다리 작업이 필수라 밀어 올려주고 잡아주고 공구를 올려주는 보조적인 인력이 꼭 필요한 작업이다. 때마침 연락이 안 되던 전 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인적인 시험이 있어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는 하는데 다른 작업이 잡힌 이상 약속을 미루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거실 천장의 몰딩은 문자메시지의 사진보다 더 심각했다. 우리의 놀란 표정에 의뢰인은 본인이 고쳐 보려고 하다 그만 더 내려앉고 말았다고 한다. 대신 의뢰인도 우리를 돕겠다며 일을 시켜달라고 한다. 키가 훤칠하게 큰 의뢰인은 손을 뻗으면 손끝이 천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의뢰인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라 우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웃고 넘어갔다.
떨어진 장식몰딩은 그대로 활용해야 비용이 절감된다. 조심스럽게 분리하고 천장에 튼튼하게 고정될 수 있게 앙카를 박아 버팀목을 만들어 나갔다. 떼어낸 장식 몰딩에는 무수히 많은 실타카핀이 날카롭게 삐져나와 있었다. 이걸 전부 뽑아내어야 다시 쓸 수 있는데 이걸 언제 뽑는단 말인가! 그때 의뢰인이 연장(공구)을 주면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크게 웃었고 농담처럼 넘어가려 했을 때 의뢰인은 진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한 때는 목수가 꿈이었습니다. 잘할 수 있으니 맡겨주세요!" 하신다. 의뢰인의 나이는 60대 후반정도로 보이셨고 책장엔 온갖 법률 책들로 가득했다. 의뢰인은 법조인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의뢰인은 펜치로 몰딩에 삐져나와 있는 실핀들을 뽑기 시작했다. 우리는 목재를 절단하고 천장에 중심을 잡고 버팀목을 튼튼하게 만들어 나갔다. 실핀을 뽑고 있던 의뢰인을 향해 "힘드시면 놔두셔도 됩니다" 했더니 "기사님은 기사님 일 하세요!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하신다. 의뢰인의 목소리엔 뭔가 알 수 없는 활력이 섞여 있었다. 정말로 일이 재미있으셨는지 신이 나셨다. 의뢰인은 실타카를 다 뽑고는 천장에 고정할 수 있도록 큰 키를 활용해 양손을 뻗어 천장에 받쳐주셨다.
의뢰인의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일을 척척 도와주신다. 덕분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심각했던 상태에서 원래의 원형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기존보다 좀 더 튼튼하게 고정을 하고 실리콘 마감이 끝나고 천장은 안정적이고 정돈된 원래의 상태를 찾았다. 의뢰인은 정말 작업이 재미있으셨던지 좀 더 몸동작이 가벼우셨지만 일은 마무리되었다. 의뢰인은 생각보다 일의 양이 많았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시며 견적보다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처럼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즐거웠다고 하신다.
의뢰인은 일을 부탁하기 전에 직접 조치하시려고 여러 곳을 다니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고 접착제도 알아보셨다고 하신다. 결과적으론 일이 더 커지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작업을 의뢰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셨다. 의뢰인은 목수일을 하셨어도 매우 잘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선입견 없이 일을 도와 못을 뽑고 자재를 잡아주고 같이하시려는 적극적인 태도는 매우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마음 또한 여느 의뢰인들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모처럼 괜찮은 의뢰인을 만나게 되어 마음이 흡족했다. 의뢰인을 만나는 의뢰인들도 뿌듯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주변엔 밝은 고수들이 존재한다. 우연히 그들을 마주쳤을 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들의 아우라는 화려하지도 찬란하지도 않으며 그저 평범하고 사소하여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