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마음 휠체어를 타는 사람 2>
형은 좀처럼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형의 정신세계에서 항상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주로 간섭을 하거나 좋지 않은 말(욕설)을 하는 편이 대부분이다. 형과 영화를 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있다. 형이 흥미를 느끼는 작품들은 자막을 읽어야 하는 외국영화보다는 대부분이 한국영화를 선호한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가볍게 웃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액션영화나 사극영화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기 위해 형과 함께 우리 부부는 극장을 찾았다. 자리는 사람들과 접촉이 적은 안쪽자리를 선택했고 때마침 형의 옆자리는 한자리만 남아 사람이 앉지 않아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형은 졸지 않고 잘 보고 있었다. 단종이 마지막 임종을 엄홍도에게 부탁하는 장면과 엄홍도가 활줄을 당기는 장면에서 슬픔이 극에 달했고 옆에 앉은 와이프가 슬픔을 참으며 조용히 흐느꼈고 우리 뒷자리 어느 관객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울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형이 자주 먹어보지 않는 돈가스를 점심으로 먹고 나왔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단종과 세조에 대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형에게도 영화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형은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 나는 재차 형에게 슬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형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재미있게 봤다고 말한다. 나는 재미있었으면 됐다고 했다.
형과 나는 감정선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내가 형의 듬직하고 커다란 등에 올라타거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한다면 형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나 같으면 내 동생이 그런 행동으로 장난을 걸어온다면 업고 한참을 신나게 달리며 웃어댈 것 같다. 현실적으로 형은 "이 새끼가 미쳤나!" 하며 바로 엎어치기를 한다. 그리곤 형을 무시했다며 묵직한 주먹이 날아온다. 이게 우리 형제의 놀이방식이었다. 형과 장난을 치고 놀이를 한다는 것은 형의 일방적인 괴롭힘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주변사람들은 두 형제가 다툰다고만 치부했었다. 형이 나와 정신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우치던 어느 날 형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되었다. 대화가 적어지고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고서부터는 형과 완전히 독립해서 생활했고 숨이 트인 듯 살 것만 같았다.
형은 어땠을까?
형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일주일이 멀다 하고 옮겨 다녔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다 어느 날부터 내 직장에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돈을 달라고 요구했었다. 나는 돈을 줘 돌려보냈지만 위조지폐를 줬다며 원망하며 태워버리기까지 했었다. 형은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피폐해져 갔던 것이다.
형은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나는 형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명상을 배워 형과 같이하기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하고 산보도 같이 하며 노력했다. 나와 달리 형은 생각과 감정, 이해 등 여러 면에서 달랐다. 형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형을 인정하고 일상적인 삶을 잘 살아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일 것이다.
형은 건장했고 와이프 말대로라면 배우설경구 씨를 닮은 듯 인물도 좋았다. 그런 성인을 돌본다고 하면 믿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외형으로만 본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만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이 있다.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야 진정 건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형은 괴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챙기듯 형태가 없는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이 또한 챙겨야 한다.
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적 부딪힘이 많이 사라져 갔다. 슬픈 영화를 보았다고 슬픔만 느끼겠는가! 재미있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슬펐던 재미있었던, 중요한 것은 함께 영화를 보면서 같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함께 즐겁게 어울릴 수 있을 때 마음과 정신은 밝음으로 채워지는 것 같다. 같이 할 수 있는 일, 함께 할 수 있는 일, 굳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같이 걷기, 함께 식사하기, 더불어 즐거울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이라면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