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도와줘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2

by 세공업자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할 때면 나 자신이 자연의 소리에 담긴 중심 한가운데 와 있는 듯 편안했다. 눈을 감고 차분하게 내면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느껴본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 쏟아지고 푸르른 들풀이 끝없이 펼쳐진 숲 속 한가운데 와 있는 듯 상쾌했다. 모든 흐름이 정지되고 온전히 나 자신만 존재하는 듯 맑고 고요하다.


형에게 명상센터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형은 순순히 ‘그래!’ 할 리 만무했지만 형의 상태는 벼랑 끝에 걸쳐있는 듯 위태로웠다. 형은 싫다고 했다. 그러면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자고 했다. “내가 미쳤어! 정신과엘 가게” 예상과 같이 강하게 거부했다.


회사 일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바쁜 일에 치이다 보면 어느새 일에 빠져 있었다. 회사는 임원급 인사가 마무리되고 나머지 직급에 대한 인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도 진급할 시기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리로 진급하는 경우라 기존대로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특별한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형은 오늘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섰다.

방안엔 형이 있었다. 책상 위엔 컴퓨터가 없었다.

조립컴퓨터를 사용하다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장만한 신형 삼성컴퓨터와 프린터가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형 설마, 컴퓨터 어떻게 한 거야?” 다급하게 물었다. 형은 당당하듯 말했다.

“내가 갖다 버렸어!”

“뭐? 어디다가 버렸는데?”....

“없어! 내가 아예 없애 버렸어!” 형은 시원하다는 듯 말했다.

“뭐!” 시간이 정지한 듯 느껴졌다. 형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형의 멱살을 두 손으로 잡았다. 형도 나의 멱살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 잠시 정적과 함께 긴장감이 돌았다. 내가 말했다.

“왜! 왜! 왜 그랬는데?”

“야 이 개새끼야! 네가 밤마다 컴퓨터로 날 도청했잖아!”

“뭐? 뭐라고? 형 미쳤어 그게 가능해?”

“내가 왜 미쳐? 난 미치지 않았어! 세상이 다 미쳤단 말이야! 왜 날 도청하는데!”

“뭐?”

나는 형의 멱살을 잡은 손에서 힘이 풀렸고 팔을 떨어뜨렸다. 형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미쳤다고 했다. 형의 진지한 눈빛과 말들은 ‘제발 나 좀 도와줘’라는 의미처럼 간절하게 마음에 파고들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형을 도울 방법을 인터넷을 통해 늦게 까지 알아보곤 했는데, 형은 밤마다 내가 자신의 머리를 컴퓨터로 도청한다고 했다. 그런 컴퓨터를 어디론가 가져가서 망치로 산산이 조각을 내고 안에 들어있는 부품들은 더 잘게 잘게 조각조각 부수고 가루를 내어 불로 태워 없앴다고 했다.


명상을 하면서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건강이 안 좋아 시작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 우울증, 스트레스, 순환장애, 심신허약, 등등 명상과 호흡을 하면서 호전되는 분들이 있었다. 나 자신도 그런 과정을 느껴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형을 달래고 달래서 명상센터에 데리고 갔다. 명상센터의 고수분들에게 형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는 없는지 부탁하고 매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해야 할 형은 명상센터에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형은 명상센터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형과 형 주변에 불길한 일이 생기기 전에 무엇이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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