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의 끝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3
혼자 정신과에 찾아가니 의사 선생님은 형을 모셔 와야 한다고 한다. 선생님께 형과 나의 경제사정을 이야기하고 병원비가 얼마나 들지 여쭤보았을 때. 선생님은 다행히도 형이 의료수급자로 되어 있어 병원비는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으니 무조건 모시고 오라 했다. 아마도 전에 살던 곳에서 고맙게도 형이 뚜렷한 직업과 수입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의료해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급여수급권자’로 조치해 두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떻게 하면 형과 함께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볼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이미 형에게 병원에 가보자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었고 형은 그때마다 ‘내가 미쳤어 정신과엘 왜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흥분했었다.
형은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고 했었다. 그전에도 가끔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주변에선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형의 귀에서 들리는 이명(耳鳴)은 말 그대로 이명이기도 했지만 형은 예전부터 조금씩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리도 듣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성장하면서 형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억울하게 하지도 않은 욕들을 했다며 형에게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얻어맞기를 반복했었다. 그때마다 내가 했던 말은 “내가 미쳤어! 내가 왜 형한테 욕을 해?”였었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형은 오늘 어떻게 지냈을까? 별일 없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아무튼... 형과 함께 병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집에 들어섰다. 형이 있었고 방문에 뚫린 야구공만 한 커다란 구멍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에서 자꾸 욕하는 소리가 나잖아! 그래서 못하게 했어!” 형은 당연하다는 듯 흥분하며 말했다. 어느새 안식처인 집이 형을 닮아가고 있었다. 형의 정신과 마음처럼 어지럽고 불안전하며 곳곳에 상처가 나고 있었다.
‘형은 아픈 거야! 형은 정신과 마음이 아픈 거야!’ 형과는 부딪치면 안 된다며 명상하듯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켰다.
나는 형에게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안 들린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병원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함께 가서 상담도 같이 하고 검사도 같이 받아보자고 했다. 형의 정신과 귀가 멀쩡한데 왜 그런 소리들이 들리는지 상담이라도 받아보자고 했다. 나는 왜 형이 밤만 되면 귀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심해지는지, “시발! 그놈들이 왜 잠을 못 자게 욕을 하며 괴롭히는 거야”라며 거칠게 형의 편을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형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병원에 같이 가보자고 한다.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있는지 같이 가보자고 했다. 순간 질서 없이 헝클어진 실타래의 끝을 찾은 듯 눈앞이 밝아졌다.
형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엔 내가 전에 와서 상담을 받은 터라 뇌파검사와 심리검사 등 필요한 검사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형의 옆을 지켰다. 다행히도 형은 심리검사지에 있는 질문들이 자신과 연관 있는 것들이 많았는지 ‘헤헤헤’ 웃기도 하며 체크해 나갔다. 볼펜을 쥔 형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나는 검사시간 내내 형과 함께 있었고 형이 검사지를 끝까지 작성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형과 정신과에 오기까지 험준한 과정이 있었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리라 생각되었다. 검사를 통해 형이 이제까지 힘겹게 겪어왔던 증상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치료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선생님은 검사결과가 나와 봐야 확실하겠지만 입원치료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병원검사를 마치고 돌아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은 그동안에도 위태위태하게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형은 동사무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주소지를 나의 전셋집으로 옮기고 공공근로라도 있으면 하려고 물어보았는데 공무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했다. 형은 무시당한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는 듯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공무원들이고 경찰들이고 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들이고 전부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도청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은 간단명료하게 한마디 하셨다. 형님을 당장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나는 선생님 병원에 입원하면 되겠냐고 했었고 선생님은 공립으로 운영되는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형이 의료수급자니 치료비는 부담이 적을 거라며 소견서를 작성해 주시며 EH병원에 빨리 가라고 하셨다.
형이 이 병원에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또다시 더 큰 병원에 가자고 하면 순순히 간다고 할까? 부담감에 마음이 무섭게 짓눌려 왔다.
나는 형을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형과 모두의 안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