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알려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너희 삼 남매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라는 말씀이셨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과 나는 영월 큰 집에, 누나는 대구 작은집에 맡겨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살던 곳에서 우리 삼 남매에게 집과 학비를 지원하겠다며 동사무소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어졌다. 우리 삼 남매는 가만히 있었으면 그렇게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남과 동시에 우린 어른들에 의해 흩어지게 된다. 난 초등학교 3학년, 형은 6학년, 누나는 중1. 나는 형과 함께 첩첩산중(어린아이시점) 영월 큰집에서 살면서 형만 바라보며 형만 의지하며 살아갔었다. 농사일을 할 때도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도 서러움을 겪을 때도 형이 나를 챙기지 않아도 형은 존재만으로도 항상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다. 형은 건강했고 언제나 강해 보였다.
힘겨움을 이겨내고 성인이 된 지금, 형은 육신이 아닌 정신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
형 없이 소견서를 들고 EH병원에 찾아갔다. 진료와 입원상담을 했으나 처음 찾아갔던 병원에서 그랬듯이 형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형을 병원에 데리고 와 진료든 입원이든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보호자인 온전히 나만의 몫이었다. 명확한 사고로 발생한 부상이나 증상이 분명한 질병이 아닌, 보이지 않는 형의 증상은 형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고 치료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 부분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고 안타깝게 했다.
집에 들어왔다. 형이 있었고 집에도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어디선가 쉬~익 하는 물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좌변기 위에 놓여있던 변기물탱크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물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헉! 내 집도 아닌데...
형을 바라봤을 때 형은 변기에서 욕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고 했다. 욕이 안 나오게 아예 부숴버린 것이다.
너는 저 소리가 안 들리냐고 형이 물었다. 나는 안 들리는데 뭐라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개새끼! 미친 새끼!..." 욕을 계속해서 한다고 했다. 나는 실체가 없는 사람들이니 무시하라고 했지만 형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럼 만나자고 해보라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조금 있다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럼 나와 같이 나가서 만나자고 하니 형은 좋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후 약속 장소인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밤늦은 시간이라 공원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형에게 아무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들리는 소리는 환청 같다고 했을 때 “이 새끼들이 장소를 옮겼어! 다른 데로 오래”라며 어둠 속으로 뛰어갔다. 나는 다급히 형을 부르며 쫓아갔지만 형의 모습은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산산이 박살 난 변기물탱크를 치웠다. 형은 그날 밤 들어오지 않았다.
형이 다음날, 그다음 날 들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쯤 형은 집에 들어와 있었다. 형은 들리는 목소리에 따라 여러 장소를 옮겨가며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지 않았고 장소를 변경했다고 한다. 나는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 상담 한 번 받아보자고 했다. 그놈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했다. 형도 궁금하다며 병원에 가보자고 한다.
형을 시립 EH병원에 데리고만 가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형과 함께 병원직원에게서 건네받은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상담을 하던 직원의 입에서 ‘입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때였다. “뭐 입원을 해? 내가 왜 입원을 해! 내가 미쳤어 여기에 입원을 하게!” 형은 흥분하며 의자를 걷어찼다. 형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야 이 개새끼들아 내가 미쳤어!” 의자를 집어던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아무도 제재하는 사람이 없었다. 형은 큰 소리로 욕을 쏟아내며 재빠르게 병원을 나가 자취를 감췄다. 병원 분위기는 자주 겪는 일인 듯 대수롭지 않게 곧 평온함을 되찾았다.
병원에만 같이 오면 될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병원 직원은 입원수속을 다 끝내고 병원에서 모시고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굴 탓한단 말인가! 나는 병원 직원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함께 올 사람들도 없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때 병원 직원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연락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