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작전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5

by 세공업자

내가 기억하는 형은 체력이 강하고 힘이 셌다. 나와 형이 영월 큰집에서 생활할 때도 형은 중학교까지 왕복 16km가 넘는 등하교 길을 3년 내내 걸어 다녔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논밭 지나서 걷고 뛰었다. 형은 학교에서 ‘원펀치’로도 유명했었다. 형 친구들은 한방이면 싸움이 끝난다고 해서 그렇게들 불렀다고 했다. 형은 학교에서 장거리 육상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따라올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힘의 서열을 가리는 사파리 같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형은 최상위였고 불량한 학생들도 형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세 살 차이 나는 우리는 이전까지의 다툼은 싸움이 아니었다. 형이 몸집이 커지면서 한방 치면 나는 저 멀리 나뒹굴어지곤 했었다. 그런 형덕에 단련이 된 나는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내가 군대에 다녀오고 성인이 된 지금도 형은 자신이 바라보는 동생이 어릴 적 꼬맹이로 보였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병원에 가기 싫다고 하는 형을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 한들 형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형이 EH병원에서 사라지고 나서 형의 신변에 어떤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많은 걱정이 되었다. 병원직원은 건네준 명함으로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 방면에 전문가들이니 다 알아서 조치해 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애초에 처음부터 병원에서 보호자와 충분히 상의하고 준비해서 대상자를 안전하게 진료를 받게 하거나 입원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조치하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이 터지고 나서의 수습은 대상자의 안전에도 보호자에게도 더 힘들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형을 치료하고 돌봐줄 병원에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형은 또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나는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일도 형일도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형을 도청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실존한다면 달려가서 어떻게라도 해보겠지만 그들은 내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형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정하기에는 형은 너무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형을 형의 세계에서 구출해 내는 일들이 형에게 원망과 미움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면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여기저기 엉망이었다. 명상하듯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놓고 무심하게 집중해야 한다. 군사작전을 하듯 실수하지 않게 계획을 세우고 형을 안전하게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중요했다.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경험이 많아 안전하게 병원까지 모시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끔 거리에서 보던 긴급 응급차를 운용하는 분들이었다.


퇴근하니 형이 집에 들어와 있었다. 형은 낡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수척한 얼굴로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나는 형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에 다녀왔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형은 그놈들을 쫓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났냐고 했더니 그 놈들이 만나자는 약속장소에 갈 때마다 나타나지 않았고 장소를 옮겼다고 했다. 형은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인천에서 여의도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는데, 형은 그 사람들을 쫓고 쫓아 위험천만하게 밤낮없이 걷고 걸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형은 그 놈들은 존재하고 곳곳에 숨어서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컴퓨터로 자신의 머리를 도청하고 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전자제품이나 주변의 모든 물건들을 도청하여 자신을 간섭 해댄다고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며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언제까지 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형이 놀라지 않도록 엠블런스 사이렌은 꺼 달라고 했다. 그리고 형을 안전하게 병원까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도의적으로 잘하고 있는 짓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전 24화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