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6

by 세공업자

군대 가기 전 배고픔과 고달픔의 연속이었던 나의 삶은 언제나 맥이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며 항상 머리가 무거웠다. 고등학교 시절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책을 오래 보지 못하고 쓰러져 자거나 항상 다리가 무겁고 몸이 찌뿌둥했었다. 그 이유를 군에 가서 알게 되었다. 내게 유일하게 삼시 세끼를 챙겨준 곳이 군대였으며 정상적인 끼니를 먹으면서 고질적으로 겪었던 힘든 증상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이 남들 못지않아졌고 더러는 뛰어난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대할 때 즘에는 세상에 나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형은 군대에 가질 않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나이에 세대주가 되었고 가장이 되었고 군 면제가 되었다. 형이 군대에 다녀왔으면 나 같이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었다.


EH병원에서 받은 명함으로 연락을 했다. 사설구급 대원들이 신속하게 출동하겠다고 한다. 잠시 후 구급차와 함께 두 명의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 형에게 설명을 할 테니 최대한 안전하게 병원까지 모시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구급요원들은 경험이 많다며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모셔가겠다고 했었다. 내가 앞장을 섰고 두 명의 구급대원들이 나를 따라 3층으로 올라왔다. 검정현관문 앞에서 나는 잠시 주춤하며 주저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 병원에 가자. 이분들이 모시고 갈 거야.” 형은 많이 놀란 듯했다. 두 명의 구급대원들을 보자마자 “뭐 하는 새끼들이야!” 하며 달려들며 거칠게 밀쳐 내었다. 순간 구급대원들은 신발을 신은 채 집안에 들어섰고 형을 제압하여 바닥에 안전하게 눕혔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형은 자신에게 닥친 일에 많이 당황했는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연속해서 쏟아내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형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구급차에 태우곤 구급베드에 안전벨트로 고정시켰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이 형과 동승하며 내게는 조수석에 탑승하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운전대를 잡았다. 구급차가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차 창밖으로 동네의 밝은 풍경이 들어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 시간에 들어와서일까! 평일 오전에 좀처럼 보기 힘든 한가하고 평온한 동네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상스럽게 귀에서는 소란한 가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급차가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K야 내가 네 형이잖아. 엄마하고 부천에 살았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고 가슴에서 올라온 감정이 목에 걸려 메었다. 어머니와 삼 남매가 함께 살며 화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형은 또 "나하고 너하고 시골 큰집에 가서 살았잖아!" 순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집에서 살면서 서럽고 힘들 때마다 형과 의지하며 살아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네 형이잖아 나한테 왜 이래?"라는 말에 이제까지 형의 상태가 심각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차창밖 풍경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형에게 되묻고 싶었지만 형은 알리 만무했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했다간 목에 걸린 감정이 폭발해 울분으로 터져 나올 것 만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직원이 제시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그러는 동안 구급대원들이 형의 곁에서 호위하듯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고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간호사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병원안쪽에서부터 내려왔다. 그들은 형을 양쪽에서 부축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형은 의외로 그들을 따라 편안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서류작성을 도와줬던 병원직원이 입원수속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의 귀중품과 소지품이라며 넘겨주었다. "뭐 별것 없었어요. 이게 다입니다." 내가 넘겨받은 형의 소지품은 다 낡아빠져 눌리고 눌려 네 모서리가 한쪽으로 굽은 낡은 지갑과 안에 들어있는 빛바랜 신분증, 집 열쇠,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은 무소유 자체였고 동전 두 닢은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었다.


형이 이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병원에서 평온을 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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