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7

by 세공업자

형이 EH병원에 입원 후 형의 소지품을 챙겨 집에 돌아왔다. 방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구급대원들의 신발자국들과 어질러진 물건들, 문짝들에 뚫린 형의 주먹자국들, 깨져 없어진 변기 물탱크, 사라진 책상 위 컴퓨터와 프린터, 뽑혀 없어진 인터넷 라인, 있어야 할 자리에서 사라진 물건들, 형의 흔적들이 마음을 더욱 휑하게 만들었다.


페인트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를 찾아가 페인트를 구입하고 뚫린 문짝 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뚫린 곳을 메우고 빠다(퍼티작업)를 바르고 사포로 갈고 페인트를 칠했더니 말끔하게 마무리되어갔다. 흔치 않은 버건디색상의 양변기를 찾아 오만 곳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해 결국 별도 주문을 했었다. 새로운 변기와 일체형의 세면대가 맞지 않아 뜯어내고 다시 공사를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EH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형의 의료보험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의료급여수급자’로 되어있지 않아 병원비가 많이 나올 거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재차 확인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관할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었다.

형의 관할 동사무소는 어디지? 그제야 형이 우리 집으로 주소지를 옮겼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사회복지 담당자를 찾으니 어느 여성분이 나타났다. 형의 일로 왔다고 하니 나보고 동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며 형의 의료급여수급자로 되어있었는데 달라진 것 같다며 확인을 요청했었다. 나를 보던 여성분의 표정이 급변하며 형님이 동사무소에 와서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며 흥분했다. 깜짝 놀란 나는 형이 불안정했지만 천성이 착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안 한다고 했었다.


형이 주소지를 옮기고 얼마 후 동사무소에 찾아왔다고 했다. 형은 공공근로 일자리가 있느냐고 했고 지금은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단다. 그런데 형이 공무원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며(공무원의 사무적이 태도) 돌변하여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상태를 보니 술에 취해 있었다고 했다. 나는 형이 술을 먹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었다. 여성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보았다고 했었다. 의료급여 수급권은 그래서 취소되었다고.


여성분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배가 불룩한 것이 임신상태로 보였다. 임신 중이신데 형이 그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형을 대신해 사과했다. 그리고 형의 불안정한 상태를 설명하고 지금 입원하여 치료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형의 병원비가 걱정이 되었다.


며칠 후 동사무소에 다시 찾아갔다. 만삭이 다된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임신 중인데 형이 한 불쾌한 행동에 대해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었다.

공무원들이 형을 어떤 태도로 대했었건 간에 형이 실수한 것이고 누군가는 사과해야 한다면 동생인 나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경제적 사정을 이야기했다. 형의 치료비를 온전히 내가 부담한다면 둘 다 견디기 힘들 거라고 했다.


사회복지사는 의료급여수급권자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형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지로 전입을 했고 전입과 동시에 동생인 내가 형의 부양의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된다고 했다.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의 부양의무자가 되어 있었다.


다시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형의 의료급여수급문제는 어떻든 간에 담당공무원이 열쇠를 쥐고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사회복지사를 만나 애원하듯 간절하게 부탁했다. 안 되는 이유 말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형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파산할 거라고 했다. 사회복지사는 난감한 듯 나를 쳐다보며 자신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는 없다며 내게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형님이 의료수급권자로 되어 있었을 당시 상태를 생각해 보면 될 거라 했다. 그때 알았다. 형이 나의 전셋집으로 전입오기 이전처럼 주소지를 달리해 놓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사가 에둘러서 이야기한 것을 간절했던 나는 알아들었던 것이다.

이전 26화무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