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젖 준다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8

by 세공업자

형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혼자 지내게 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집에 와있으라고 했던 것이, 형은 주소지를 내 집으로 옮겼고 그 계기로 나는 형의 법적 부양의무자가 되어있었다.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알려고 해도 제대로 된 설명도 듣기 힘들었다. 다시 이전상태로 되돌리려 해도 쉽지만은 않았다.


질병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성인이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가족이 돌본다고 한다면 도움을 주질 못할망정 그나마 받고 있던 해택마저도 빼앗고 모든 책임을 그의 가족에게 떠안기는 꼴과 같았다. 조선시대 가혹했던 군포가 생각났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대! 행정은 조선시대 같았다. ‘우는 아이 젖 준다.’ 고 하듯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찾은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떻게 해서든 풀어나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생활정보지에 나와 있는 방들을 샅샅이 훑어서 명상센터에서 가까운 곳에 방을 알아보았다. 명상을 배워서 형이 병원에서 나오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저렴한 방을 시간이 날 때마다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나오질 않았다.

그때였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건물주한테서 연락이 왔다. 계약기간이 다 되었으니 나가달라고 한다. 계약당시 살만큼 살다 원하는 날짜에 언제든 나가도 된다고 하더니, 지인들이 들어오기로 했단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듯 시간도 돈도 숨 쉴 틈도 없었다.


벼룩시장에 나온 월세물건 중 아파트나 빌라에 방 하나를 저렴하게 임대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대부분 ‘여성가능’이었는데 그 집은 ‘상관없음’이라 연락을 하고 찾아갔다. 작은 빌라에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남자가 나왔다. 남자의 안내로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에 어린 갓난아이가 누어 연신 발을 버둥거리며 나의 움직임에 해맑은 웃음과 시선이 따라왔다. “애 엄마는 없어요. 지내시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남자가 말했다. “지금은 직장 다니는 여자분이 살고 있는데”라며 방문을 열어 안을 보여줬을 때 작은 방안엔 옷가지와 화장품, 살림들이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었다. “나간다고 합니다.” 이 집은 형이 병원에서 나와 지내기엔 맞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아저씨가 육아에 지쳐 보였고 예민한 형이 한 공간 안에서 세를 산다는 것이 여러모로 제약이 따를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와중에 자기 집이 있어 방하나를 세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럽기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있는 빌라 전세금과 같은 시세에 원룸을 얻었다. 명상센터에서도 가깝고 형이 지내기에 딱 좋은 조용한 꼭대기 층이었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형이 병원에서 나오면 이곳에 머물고 나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될 테니까!


다시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사회복지사는 출산이 임박했는지 보기에도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세대를 분리해서 전출 간 것에 대해 설명을 하고 형이 기존에 되어있었던 의료수급권 만이라도 회복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사회복지사는 시일이 좀 걸릴 거라고 했었다. 상관없었다.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연속해서 닥친 일련의 일들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길을 찾으니 하나둘 풀려나갔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들이었다. 군에서 농담처럼 했던 말들.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최고의 독도법인 ‘물어법’이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포탈에 검색해 보면 되겠지만 그때는 여의치 않았었다. 길을 모르거나 알 수 없다면 알 때까지 ‘물어법’을 쓰면 된다. 두꺼운 얼굴과 집요함, 알고자 하는 간절함만 있으면 된다.


자존심은 버릴 수 없으니 상하지 않도록 장기보관이 필요한 것들은 냉동실에, 가벼운 것들은 냉장실에 보관해 두자. 시간이 흘러 잊힐 듯 무뎌졌을 때 자존심냉장고는 자동으로 비워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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