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을 쌓아라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9

by 세공업자

명상센터에 와서 차분하게 앉아 호흡을 고르고 명상에 들어갔다. 마음이 차분하게 이완되기보다는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맑은 시냇물 속의 조약돌을 무심히 바라보듯 잡념들을 물결 따라 흘려보낸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했던 말 한마디에 의식이 맑아졌다.


“덕(德)을 쌓아보세요”


형의 이상행동과 정신상태 등의 문제로 병원에서도 진료를 받고 명상센터에서도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전엔 서울에 있는 여성수행자도 찾아가 보았었다. 누군가 형의 상태를 보고 내게 ‘덕을 쌓아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미신같이 들렸던 그 말이 자꾸만 뇌리에 남았다. 너무 어려 얼굴 기억도 못하는 아버지는 사고로, 어머니는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던 것과 형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덕(德)이 부족해서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형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어떻게 돌보고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하게 다가왔다.


형이 입원한 지 2주쯤 가까이 되었을까?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형이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소식이었지만 그간의 애탔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서류를 준비해서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그간 있었던 병원비 고지서를 내밀었다. 꽤 많은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무슨 병원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물었고 병원직원은 여러 검사가 진행되었고 입원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의료급여수급권자가 아닌 일반 환자라 그렇다고 했다. 수급권자로 전환되면 앞으로 병원비 부담은 적을 거라고 곁들었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뵈었지만 형을 면회하진 않았다. 형을 면회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형이 원망하고 증오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몹시 무겁게 짓눌렸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위에 눌린 듯 무겁게 잡아당겨왔다. 형을 대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세상은 한창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었다. 경제적 부(富) 보단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들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요가, 마음수련, 템플스테이, 명상, 건강한 먹거리, 생식, 캠핑, 무슨무슨 힐링 등등 다양한 방법들이 세간에 관심을 받았다. 내가 하고 있던 명상도 썰렁하던 센터가 회원들이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나는 명상을 배우며 명상에 소질이 있어 보였다. 명상을 하는 회원들이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보면서 명상에 관심이 더욱 켜지기 시작했다. 명상을 배워 명상센터를 운영하면 경제적 문제도 해결되고 좋은 일을 하며 덕(德)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형과 함께 명상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형의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명상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과 방법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형이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되어갔을 즈음, 형의 담당의사분(A선생님)을 찾아갔다. 형이 잘 치료받고 있는지, 형은 잘 지내고 있는지 여쭤보았다. 형은 차츰 적응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셨다. 면회신청 창구에서 형과의 관계 등을 말하고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실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나무로 된 기다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나 이외엔 없었다. 창구 옆으론 길게 뻗은 복도가 완만하게 경사진 오르막이었다. 면회실에 있으면 그 기다란 복도는 보이지 않게 된다. 형이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 3살 많던 형은 함께 자라며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고 나는 항상 얻어맞는 입장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한 달 전 병원으로 오던 구급차에서 했던 “내가 네 형이야”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길게 뻗은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살짝 끄는듯한 낯익은 발걸음소리가 점점 면회실로 다가왔다. 이윽고 끊어진 벽면에서 형이 나타났다. 환자복을 입은 하얀 얼굴엔 날카롭게 빛나던 광기 어린 눈빛이 사라지고 편안해 보였다. 형이 살짝 미소를 보였다. 나는 “잘 지냈지?” 물었고 형은 여유있고 편안하게 대답했다.


"어, 잘 지냈어. 근데, 여기에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더라."


나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꾹꾹 눌려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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