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을 닮은 일상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1

by 세공업자

형이 회사로 찾아왔다. 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고 돈이 없다고 했다. 돈을 줘서 돌려보내도 형의 초췌한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 변함이 없었다. 또 내가 위조지폐를 줬다며 태웠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먼저 형의 상태가 어떠한지 같이 지내며 살펴보기로 하고 형을 당분간 집에 와서 지내라고 했다. 형과 떨어져 사는 게 우리에겐 최선 이었지만 지금 형의 상태는 평범하지 않았다.


3층 빌라 전셋집은 방이 2개로 하나는 내가 사용하고 하나는 잡동사니들을 넣어두었다. 누나가 자신의 집이 좁다며 여러 가지 옷가지와 물건들을 들고 와서 넣어두었었다. 방을 정리해서 형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형과 떨어져 살기로 했던 두 번째 소원을 나는 어겼다. 집에 와서 있는 며칠 사이 형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회사는 임원급 인사시기와 원가절감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잦은 야근으로 어깨에 통증이 심하고 피로가 극에 달했는지 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퇴근하여 집에서 편하게 쉴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집이 좀 휑하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누나가 맡겨 놓은 물건들이 도둑을 맞은 듯 보이질 않았다. 도둑맞았다기보다는 누나가 본인 짐들을 가져간 듯 말끔하게 보이질 않았다. 누나에게 연락해서 짐을 가져갔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형에게 물건들을 치웠는지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물건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형에게 차분하게 물건들이 있던 자리들을 가리키며 어디에다 두었는지 물었다. 형은 여기에 왜 그런 물건들이 있느냐며 화를 냈다. 자신을 괴롭히는 놈들이 자기를 감시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들이라고 했다.


“형! 정신 좀 차려,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어?”

“지금도 들리잖아 너는 저게 안 들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형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나는 형의 말을 인정해 주었다.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물건들은 어디에 있어?”

“다 갔다 버렸어!” 밖으로 뛰어나가 물건들이 있을 만한 곳들을 잰걸음으로 확인해 보았다. 헌 옷가지들을 모아놓는 장소, 쓰레기봉투를 모아두는 곳, 어디에도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이 형을 닮아가고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일까?

일상이 이빨 빠진 톱니바퀴처럼 덜커덩거리기 시작했다.

형은 내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삭임에 중독이 된 듯 보였다.


형의 상태를 돌봐줄 정신과와 상담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그 당시에는 인터넷에 누적된 정보들이 충분하지는 않았었다. 집에 오면 틈틈이 여러 정보들을 살펴보았고 어느 정신과에 전화를 했다. 병원에선 당사자를 데리고 오라 했었다. 뇌리에 전에 형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형은 귀가 이상하다며 병원진료를 받았으나 이상이 없다며 정신과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신과에는 가 보았냐는 나의 말에 형은 “내가 미쳤어 정신과엘 왜가!” 불같이 화를 내며 부정했었다. 정신과엔 어찌 데려간단 말인가?


퇴근길에 명상센터에 들렸다. 몸 풀기 체조에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어깨에 힘이 빠지질 않고 팔과 함께 덩달아 올라갔다. 앉아 두 다리를 활짝 펴고 상체를 바닥에 최대한 붙이는 동작을 할 땐 상체는 온몸의 근육들이 잡아당기듯 내려갈 생각을 하질 않았고 다리 뒷부분에 찢어지듯 통증이 느껴졌다.


차분하게 몸에서 일어나는 호흡에 의식을 두었다. 호흡이 깊어지며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형과 함께 명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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