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두기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3

by 세공업자


형은 아파트 현관문 안쪽을 두꺼운 담요로 가로막아놓았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형은 밖에서 자꾸 소리가 들려서 막아놓았다고 했다. 나는 입구좌측에 있는 창고방과 주방을 거쳐 방으로 들어갔다. 형 집을 티 나지 않게 이곳저곳을 살폈고 방안에 TV와 유선전화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세탁기가 이상해. 누가 장난을 했는지 세탁기 전원을 켜면 F가 떠” 형이 말했다. 나는 방 바깥쪽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의 전원을 켰고 표시창에 F가 뜨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곤 세탁기가 정상작동하는지 동작버튼을 누루는 순간 덜거덕덜거덕 거리며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급히 정지버튼을 누르고 세탁기 뚜껑을 열고 안을 확인해 보았다. 그곳엔 방 안에서 사라진 유선전화기가 비닐팩에 싸여 들어 있었다.


“어! 전화기가 여기 있네! 왜 여기 넣었어요?” 나는 이유를 물었다.

형은 짜증을 내며 그 이유를 말했다.

“아~씨 전화기를 도청해서 괴롭히잖아. 도청을 못하게 넣어두었어!”

“응, 그래도 전화기 망가지면 안 되니 다른 곳에 넣어 두세요.”라고 말하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밖에 제수씨도 와 있으니 얼른 나갈 준비하고 점심 먹으러 갑시다.”


제수씨가 밖에 와 있다는 말에 형은 기분이 좋은지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아내는 주차장에서 우리가 어질러 놓은 차 안을 정리하며 형이 앉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형의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와 형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내는 ‘아주버님 생신 축하드려요’ 라며 축하 인사를 했고 형은 기분이 좋았는지 마트로 향하는 차 안에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방안에 있던 TV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며칠 전 형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한창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고 알려줬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형에게 한국팀 경기를 꼭 챙겨 보라고 했던 터였다. 형은 TV에서 하는 방송들이 재미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TV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현재 TV는 작은 방에 넣어두고 문에 잠금 고리를 달아 열쇠로 채워 놓은 상태다.


토요일 12시 점심시간, 마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 일행은 얼마 전에 알아놓은 한적하고 손님이 많지 않은 2층 한정식 식당에 들어가 가마솥반상을 주문했다. 이 식당은 갓 지은 가마솥 밥이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이 찾질 않았고 우리 일행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식당이었다. 형은 목소리를 높여 이번 주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구임대 아파트는 요즘 리모델링 공사로 일과시간에 매우 시끄럽다고 했다. 공사 소음을 피해 오늘 우리가 방문한 마트 맞은편 홈플러스가 있는 스퀘어 지하 쉼터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때 조상택이 지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동행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어린 김문식이었다고 했다. 형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사람에게 끊임없이 감시를 당한다고 했다. 왜 자신을 감시하고 괴롭히는지 힘들다고 했다. 형은 이런 현상을 ‘음파도청’이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전화도 했다고 한다. 나는 경찰에서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다고 형에게 물었다. 형은 경찰에서 ‘음파도청 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말했다’라고 하던데, 그들은 계속해서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잠도 깊이 못 자게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식사가 나왔고 갓 지어 나온 스테인리스 솥에선 구수한 밥 냄새가 구름 같은 김과 함께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형과 아내는 밥을 유기그릇에 덜어 담았고 나는 두 사람의 솥에 남아 있는 누룽지에 따뜻한 물을 따라 주었다. 나와 형의 ‘이상한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는 아내가 참 고마웠다.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형은 목소리 높이와 흥분도 많이 안정되어 갔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서 2L 생수 6묶음 6개와 겨울에 형이 신을 수 있는 양말 여러 켤레, 기타 물품들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형은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많이 편안해져 갔다.


형과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것. 장을 보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 형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 주며 함께 시간을 갖는 것. 이런 사소함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거리. 그래서 서로의 삶이 존중되며 영유되어 나가는 거리. 나는 이 간격을 ‘아름다운 거리두기’라고 하고 싶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리는 우리 나름의 ‘아름다운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법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 02화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