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병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4
10대 때 나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꿈 많은 중고등 학교시절을 보내며 누구든 저마다의 꿈과 이상이 있었겠지만 내게도 간절했던 소원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소원은 삼시 세끼를 매일 먹어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소원은 형과 따로 쓰는 방을 가져보는 것이었고
세 번째 소원은 경제력을 갖는 것이었다.
공부하는 재미가 있어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입학금 외엔 등록금을 내지 못하던 겨울 방학 때였다. 고민 끝에 자퇴서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한 후 학교에 찾아갔다. 그때 우연한 인연으로 근로장학생을 하며 학교에 계속해서 다니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립학교였으며 서무과가 학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로장학생의 조건은 등록금과 얼마의 용돈(등하교 버스비도 안 되는 정도)을 받으며 서무과에서 필요로 하는 청소와 학교 잔심부름 등을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고마운 마음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시작한 근로장학생이었지만 곧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엔 나와 같은 근로장학생을 하다가 서무과 직원이 된 여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나와 같이 가난하지도,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근로 장학생을 했었고 졸업 후 서무과 정직원이 되었다고 했다. 선배는 수업이 끝나고 10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서무과에 와서 대기하라고 했고 잔심부름을 시켰다. 그렇게 대기하는 일들은 휴일에도 방학기간에도 계속되었다. 잔심부름 일로 수업시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들도 생겼다. 수업에 빠지는 일이 생기다 보니 성적은 떨어졌고 교우관계도 멀어졌으며 내면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고뇌의 날들은 지속되었고 어느 날부터 깊은 생각이 계속되었다.
왜 이렇게 몸에 힘이 없고 늘 피곤하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
형은 왜 나하고 끊임없이 갈등이 생길까?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지?라는 내면의 질문들이었다.
위에 세 가지 소원과 맞물리는 질문이기도 하였다.
질문들에 대한 내면의 대답은 한 가지였다.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성인. 그 길엔 고등학교 졸업장이 꼭 필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이제부터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친구들과 가깝든 멀어지든, 서무과의 일이 합리적이든 불합리적이든 상관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성인이 된다는 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참고 인내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장이 쥐어졌고 덕분에 군대도 현역(그 당시에는 고졸이어야 현역으로 갈 수 있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기 전 며칠간은 편안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대기하는 기간이 있었다. 갑자기 간담회가 있다며 복장(군대에서는 어딜 가든 전투복 차림 임)을 준비하라고 해서 선택된 동기 몇몇과 참석하게 되었다. 간담회의 내용은, 훈련은 받을 만했느냐? 군 생활은 할 만하냐? 집에 걱정되는 것은 없느냐? 는 내용이었다. 나는 군 생활이 힘들고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좋은 점도 많았다. 다름 아닌 첫 번째 소원과 두 번째 소원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삼시 세 끼는 꼬박꼬박 챙겨준다. 군에서 결식은 있을 수 없다. 잘 먹는 것이 전투력을 유지하는 방법이기에 결식은 항명과도 같았다. 세끼를 챙겨 먹으면서 ‘왜 몸에 힘이 없고 늘 피곤하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었다. 군에 오기 전 밥 먹듯이 결식을 하니 몸에 힘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두 번째 소원인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형과 떨어져 지낼 수 있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과 내무반에서 단체생활을 하게 되어 두 번째 소원은 반 정도 이뤄졌지만 난 어느 정도 만족 할 수 있었다.
간담회 내용은 집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검토해 보고 며칠간의 휴가를 보내 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동기들은 농사짓는 노모의 건강이 걱정이 된다. 아내와 어린 자식이 걱정이 된다. 동생들이 걱정이 된다. 애인이 보고 싶다는 등의 사연들이 있었다. 나는 형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형이 걱정이 된다는 말에 주관자는 ‘형이?’라며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형이 좀 불안정하다고 했고 세 살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이사비용과 작은 아파트 입주권이 나왔는데 입주절차는 잘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간담회 장교는 내용을 검토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이 간담회는 ‘관심사병’(특별 관리 대상)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입대 전에 살던 경기도 부천엔 큰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월세집이 헐리면서 세입자들에게도 작은 아파트 입주권과 이사비용이 지급되었다. 여기에다가 얼마만 보태면 입주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입주 후 중도금만 착실하게 납부해도 집이 생기는 기회였기에 형이 놓치지 않고 입주했으면 했다. ‘형은 내 걱정과 다르게 직장에도 잘 다니고 착실하게 준비하여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형은 직장에 착실하게 다니지도 못했고 이사비용은 생활비로 다 써버리고 어느 허름한 동네에 아주 작고 저렴한 방을 얻어 근근이 생활하는 방식을 택했다.
형은 사회생활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 현장 일을 하면 몸이 상하고 무리가 간다.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등 여러 이유를 들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뒤에서 흉을 본다는 것이다. 나와 갈등이 생기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형은 하지도 않은 욕설을 했다 하고 평상시 대화에도 오해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다툼이 시작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형이 이상하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했지만 주변에서는 ‘형제들끼리는 다 그러면서 자란다.’ ‘쟤네 또 싸운다.’ ‘형제가 어쩜 똑 같이 저럴까.’ 하며 가볍게 여기며 넘기기 일쑤였다.
군대에 다녀오면서 나는 많은 부분에 변화가 생겼다.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형과 떨어져 있으면서 형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형은 형이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형의 세계를 인정하고 형을 돌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걸림은, 형은 형으로서 어른인 형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