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May 22. 2024

남일이야

<집수리 마음수리>

어느 노년의 여성분이 전화를 해왔다. 부동산소개로 연락했다며 임대하고 있는 아파트 화장실의 수납장을 수리해 달라고 했다. 임차인은 젊은 예비 신혼부부라고 하며 연락해서 조율해 달라고 부탁했다.
안내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방문가능시간을 물어보니 저녁 8시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좀 더 일찍은 안 되겠냐고 하니 퇴근 후 운동을 다녀와야 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약속한 저녁 8시에 방문하여 예비신랑인 체격이 건장한 젊은 남자를 만났다. 안내받은 거실과 안방화장실의 수납장을 확인해 보니 커다란 장은 양쪽 슬라이딩도어가 다 부식되어 움직이질 않았고 거울은 밑부분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너무 낡아 수리비용이 새로 구입하는 비용보다 높게 나오게 생겼다. 교환한다고 해도 크기가 있어 작업이 쉽지 않게 보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혼집에 새로운 수납장이 달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임대인과 잘 상의하여 새로운 수납장을 달기로 했다.  문제는 작업하기에 어려운 무게와 크기였다.
두 개의 장을 주문하고 임차인과 작업시간을 조율했더니 이번에도 저녁 8시에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존의 낡은 수납장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새로이 단다고 해도 1시간은 들어갈 작업이다. 더군다나 2개를 달아야 하니 밤 10시가 넘어야 작업이 끝날 판이다. 서로 배려해서 좀 더 일찍 시간을 잡자고 한 것이 일과를 마무리할 시간인저녁 6시였다.

커다란 장을 싣고 아내와 함께 의뢰인의 집에 6시에 방문했다. 장이 크다 보니 엘리베이터에 겨우 들어갔다. 커다란 아파트 현관에 장이 들어서니 틈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기존장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무게와 크기가 상당해서 먼저 거울로 되어있던 슬라이딩 도어를 떼어 내었다. 자칫 거울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크게 베일수도 있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집중해서 작업했다.

작업하는 동안 야구중계방송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커다란 티브에선 선명하고 또렷하게 야구경기가 현장감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임차인은 경기를 관람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낡은 커다란 장을 조심스럽게 때어 들고나가고 새로운 장을 설치하는 소란한 통에도 소파에 앉아 야구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거실과 안방 화장실의 장을 설치하는 소란한 상황에도 별 관심이 없이 오직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작업하는 동안에 도와줄 일은 없느냐고 묻거나 시원한 음료라도 들고 하라며 권하기도 한다. 이번 의뢰인은 뭔가가 달랐다.
더군다나 저녁시간이라 더 늦어지면 다른 세대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서둘려 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장이 예쁘게 잘 달렸다. 기존장과 차이나는 타일 부분은 깨끗이 닦고 실리콘으로 마무리했다. 의뢰인을 불러 장의 사용방법과 작업내용을 설명했다. 아내와 커다란 포장박스를 치우고 폐기물들을 들고 그 집을 나서는 과정에도 의뢰인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폐기물을 치우기 위해 아파트 폐기물분리수거장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최대한 조심하며 폐기물들을 내렸다. 이때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나타나셨다. 아저씨는 늦은 시간에 뭐 하냐고 할 법도 하신데 고생이 많다며 폐기물들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폐기물 스티커는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아저씨의 챙김에 헛헛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아내와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간단하게 챙겨 먹는 저녁이었지만 정말 꿀맛이 따로 없었다.

이전 29화 오동나무 장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