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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May 15. 2024

오동나무 장롱

<집수리 마음수리>

의뢰인은 5단 서랍장의 맨 아래 칸의 볼레일을 갈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상태를 보고 나머지 것들도 안 좋으면 모두 갈아 달라고 문의해 왔다.

서랍장에 볼레일이 달릴 경우 볼레일의 규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볼레일의 규격은 서랍을 탈거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의뢰인에게 서랍 탈거 요령을 알려줘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럴 경우 방문해야만 규격을 알 수가 있다. 사실 레일은 크게 이익이 남지 않는다. 한번 방문해서 해결하면 최상인 것을 두 번 이상 방문하면 더욱더 그렇다.      


막상 방문해 보니 의뢰했던 젊은 남자분은 본인의 사위라며 연세가 많으신 어머님이 말씀해 주셨다. 서랍장을 살펴보니 꽤 오래된 서랍장으로 보였다. 지금은 나오지도 않는 레일이 달려있었고 이것을 지금껏 별 탈 없이 사용했다니, 얼마나 조심해서 사용했는지 짐작이 갔다.

결국 같은 레일을 구할 수가 없어서 요즘 나오는 레일을 달아드렸다. 그래도 서랍장은 잘 열리고 닫히며 제기능을 찾은 것만으로도 어르신은 매우 좋아하셨다.     


짐을 정리하고 나오려는데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옷장에 문을 고정해 주는 나무 부분이(옷장문 래치) 떨어졌는데 달아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어르신의 옷장을 살펴보니 이 옷장 또한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얼마나 된 옷장인지 여쭤보니 햇수는 모르시고 젊었을 때부터 버리지 못하고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니셨다고 했다. 오동나무로 만든 옷장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셨다. 옷장은 나무로 만든 장식이 붙어 있을 정도로 옛날 물건인 티가 확 났다. 옷장의 떨어져 나간 래치가 워낙 작아 그냥 피스못으로 고정하면 그대로 갈라질 것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드릴로 구멍을 내고 중심에 피스못으로 고정하니 단단하게 고정이 되었다. 어르신은 매우 좋아하셨다.     

짐을 정리해서 막 나가려는 참에 어르신이 또 부탁을 하셨다. 오동나무 옷장을 손본 지 너무 오래되어 잘 닦아줄 수 있게 왁스 같은 것을 구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르신은 덧붙여 사위한테는 비밀로 하고 자신에게 직접 연락해서 건네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르신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시겠다며 접는 폴더폰(효도폰)을 여셨다. 내가 어르신께 전화를 하겠다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후 번호를 눌렸다.

어르신은 꼭 좀 부탁하신다며 시원한 식혜를 한잔 주셨고 문밖까지 배웅해 주셨다.     


오동나무 장롱을 손질할만한 왁스나 오일이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다. 제품은 많지 않았고 어떤 것을 해야 어르신이 쉽게 관리하실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며칠을 틈틈이 찾다가 알맞은 제품을 찾았다. 무엇보다 어르신이 금전적으로 부담이 안 되는 제품을 선택했다. 오동나무의 본연의 색상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무색의 제품을 선택했다.      


주말이 지나고 어르신이 기다리실 것 같아 월요일 일찌감치 전화를 했다. 어르신은 받질 않으셨다. 몇 번을 전화를 드리니 받으시고는 지금은 친구와 물건을 살 것이 있어 나와계신다고 하셨다. 오동나무 장롱의 왁스를 드리고 싶다고 하며 댁의 우체통에 넣어 두겠다고 했다. 어르신은 매우 기뻐하시며 잘 사용하겠다고 하시며 나중에 오면 돈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수리할 일이 없으면 앞으로 어르신의 댁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며칠이 지나서 어르신께 문자가 왔다. 이사를 준비하며 짐을 정리하시다 몸살이 나셔서 아직 오동나무 장롱을 손질하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장롱을 잘 닦아 손질하면 다시 연락하시겠다고 하셨다.      


어르신은 자녀분들과 이사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오동나무장롱을 손질하시려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문짝도 제대로 닫히고 장롱도 반짝반짝 빛나 누가 봐도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라고 보이게끔 하시려는 의도가 아니실까! 그래서 이번에도 이 오동나무장롱을 새로 이사하는 집으로 당당하게 가지고 가시려는 의도가 아니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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