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임차인은 이사한 지 하루가 되었다고 했다. 주방에 수돗물이 새어 싱크대안쪽에 축축하게 젖었다며 펼쳐 놓은 하얀 종이를 보여주었다. 주방수전에 물을 공급해 주는 앵글밸브는 한눈에 보기에도 녹이 슬어있었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전에 살던 남자학생은 이런 지경인데도 임대인에게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물이 새면 수도를 잠가놓고 쓰지 않아 말할 거리를 없앴다고 해야 할까!
막 들어온 새로운 임차인은 중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왜 하필 우리가 이사를 오니 물이 새는지 모르겠다며 임대인이 우리를 탓하지 않을까 싶어 기분이 언짢다고 했다. 나는 임대인이 그럴 분이 아니라고 했으나 임차인은 마음이 불안한지 자신들을 탓할 것이라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소 자주 들르는 인테리어부품업체 사장님이 전화를 해왔었다. 시간이 있으면 수도 좀 손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자신의 매장에 와서 필요한 부품을 챙겨가면 된다고 해서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을 챙기다 의문이 들었다. 누구의 집인지 궁금하다고 하니 사장님은 자신의 집이라고 했다. 서둘러 건물에 도착하니 임차인이 중국인이었다. 가지고 온 수도부품을 교환하려 하니 맞질 않았다. 급하게 네이버를 검색해 주변 철물점을 찾아 뛰어갔다. 하지만 그 철물점에는 원하는 부품이 없었다. 근처 또 다른 철물점으로 뛰어갔으나 그곳은 전기전문 매장이었다. 또 다른 곳을 검색하여 뛰어갔더니 그곳엔 원하는 물건이 있었다. 세 번 만에 원하는 부품을 찾았으나 그 건물에서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서둘러 돌아가서 수리를 해도 다음 예약시간을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발걸음이 급해졌고 숨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날은 벌써부터 왜이라 덥단 말인가!.
싱크대 수도 부품을 꼼꼼하게 갈아 끼우고 나서 누수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누수가 되지 않아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중국인 아주머니가 오미자음료를 건네어주었다. 시원하게 마시니 이번에 바나나를 건네주어 이번에도 그 자리에서 먹었다. 내가 잘 먹는 것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다른 음료는 하나 더 건네주셨다.
임대인에게 오늘 작업한 내용을 잘 설명할 테니 수도배관이 낡아서 혹시나 누수가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다음날 임대인인 인테리어부품업체 사장님이 전화를 해왔다. 어제 작업한 부분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고 걱정이 크셨다. 그럴 리가 없다며 확인해 보겠다고 하곤 하던 일을 끝내자마자 방문해서 확인해 보았다. 물이 줄줄 샌다던 배관에선 약간의 물기가 보이는 것이 전부였으나 보는 관점에 따라 줄 줄도 약간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피해를 줄 정도의 양이 아니라 흘러도 피해가 없을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낡은 수도배관의 한계라고나 할까!
중국인 부부는 걱정이 많았다. 또 임대인이 자신들이 이사 와서 물이 샐 거라는 걱정이었다. 수도배관이 낡아서 물이 새는 것이 왜 자신들의 탓이라고 할까. 그럼 수도배관을 수리했는데도 물이 새는 것은 내 탓이란 말인가! 나는 중국인 부부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임대인이 그럴 분이 아니라고 설명해 줬다. 그제야 안심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수도배관을 다시 연결하고 풀고를 반복하며 누수를 잡았다.
다행히도 누수가 잡히고 중국인 부부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집을 나셨다. 중국인 부부는 배웅을 해 주며 명함을 한 장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번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명함을 건네주었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중국인 부부는 마음이 풀렸는지 웃으며 알았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한다. 당연한 것이 뭐가 그리 고마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에 와서 당연한 것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낡은 수도배관에서 더 이상 누수가 생기면 안 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