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에선 한창 짐을 빼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남자분은 용달 기사님으로 보였고 큰 짐 위주로 정리하여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립식 책상과 공기청정기, 운동기구등 남자들이 쓰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날 이사 나가는 집에 도어록을 때어다 이사 가는 집에 달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었다. 짐을 다 빼고 나면 문을 잠그고 가야 했기에 나의 역할이 제법 큰 것 같이 느껴졌다. 다음날 오전에 짐이 다 빠졌을 시간에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아직 짐을 빼느냐 정신이 없었다. 디지털도어록을 분리해 내고 부품을 챙겼다. 기존에 있던 열쇠도어록을 떼어낸 자리에 달고 정상적으로 잠기는 것을 확인했다.
1톤 용달 기사님은 의뢰인의 짐이 많아 다 실을 수가 없다고 목서리를 높이셨다. 나는 공기청정기와 턱걸이 운동기구로 보이는 기둥은 내 차에 싣고 가도 된다며 짐을 들어다 차에 실었다. 의뢰인은 이사 가는 아파트에 가면 부동산 사장님이 계실 거라며 도착해서 도어록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30분 거리에 있는 의뢰인의 새로운 집을 향해 출발했다.
집 앞에 도착해 보니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문이 잠겨 있었다.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니 미안하다며 금방 도착하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잠시 후 용달 아저씨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아저씨는 짐을 내리기 시작했고 여유가 있던 나는 아저씨를 도와 같이 짐을 내려 아파트 현과 안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의뢰인이 빠릿빠릿 움직이지 일처리가 늦다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금방 의기투합했다. 용달 아저씨와 친해지면 짐을 같이 날라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감당해야 한다.
의뢰인의 아내가 도착했다. 아파트의 낡은 디지털 도어록이 열리고 새로 때어온 도어록을 달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관 철문의 규격이 달랐다. 도어록을 달아야 하는 홀이 작아 새로운 도어록이 달리지 않았다. 옮겨 달기만 하면 된다더니, 이렇게 되면 홀을 넓혀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에 처음 홀을 내는 작업보다도 번거로운 일이 생긴 것이다. 짐이 들어가고 그 틈에 현관문에 홀을 가공하고 복잡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러다간 다음 일정에 늦게 생겼다.
어찌어찌하여 도어록이 달리고 테스트를 해보니 잘 작동하였다. 이번에는 의뢰인의 아내분이 문 밖에서 열고 들어오라고 하고는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번호를 누르시고 문을 열어보세요?" 잠시 정적이 흘렸다.
"비밀번호를 누르시고 문을 열어보세요?" 다시 정적이 흘렸다.
"번호를 몰라요!"라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네! 아내분이 번호를 모르신다고요?"
"아직 결혼 전이고요, 이 집은 오빠집이에요"다시 정적이 흘렸다.
잠시 후 오빠가 도착했고 디지털 도어록 테스트를 마쳤다. 오빠는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지나 죄송하다며 점심값을 챙겨준다.
며칠 후 예비신랑에게서 연락이 왔다. 욕실문이 낡아 수리를 해달라는 의뢰였는데 방문하여 확인해 보니 이미 수리를 했던 문이 다시 탈이 났던 것이다. 다시 제작하여 달기로 했다.
공장에서 주문한 문을 찾아 퇴근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문을 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교회 오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교회에서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의뢰인은 문을 다는 동안에도 도와드릴 일이 없겠냐며 자신의 일처럼 여러 번 물어왔다. 떼어낸 문은 자신이 폐기물 스티커를 사다가 붙이겠다고 한다. 밝은 백색의 문에 화사한 백색도어록을 달았다. 밝고 화사하게 욕실 분위기가 살아났다. 일을 마치고 예비 신랑과 함께 떼어낸문을 맞들고 폐기장에 내다 놓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며칠 전 욕실장을 달아주던 예비신혼집이 떠 올랐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식을 올리는 예비신혼집 두 곳에 다녀온 것이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