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겨 있는 것.
한 노인이 사무실에 앉아있다. 희끗한 머리카락과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눈썹, 축 처진 어깨와 낡은 옷가지들. 노인의 표정은 고단해 보였다. 노인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물건들이 놓여있다. 탁상시계, 책상, 앨범, 각종 서류와 필기구들…. 노인의 고집스러운 아낌 정신이 아니었다면 이미 수차례 버려졌을 물건들이 그의 사무실엔 가득했다.
50년의 역사, 세움영화관 이대로 문 닫나? – 서진일보
수년간 계속된 재정난… 세움영화관 회복 가능성은? - 동원일보
노인은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여있는 지역신문을 바라본다. 눈이 침침해 글을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그였지만, 최근의 기사들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그를 찾아오는 소위 ‘사업가’라는 작자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돈봉투를 들이밀었고, 그는 그런 일들에 신물이 나있었다. 말로는 그를 돕고 싶어 찾아왔다는 기자들도 그의 영화관이 언제 문을 닫는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왜 그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이 영화관을 지키려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60년 전, 그는 10대의 꿈 많은 소년이었다. 우연히 본 ‘움직이는 사진’은 어린 그를 매료시켰고, 그는 한평생을 그 일에 바쳤다. 다들 먹고살기 바빴던 시기에, 그리고 예술을 하면 못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시대의 인심에도 그는 ‘움직이는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관을 열겠다는 의지 하나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 외국에서 영화 관련 장비를 사다가 사기를 맞아 큰돈을 잃었을 때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자신만의 영화관을 열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 행복했었다.
세움영화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영화관은 매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움직이는 사진’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노인, 어린이, 청년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관에서 이 ‘움직이는 사진’들에 열광했다. 그는 영화관을 통해서 큰돈을 벌었고, 영화관의 규모는 날로 커져갔다. 하지만 다른 영화관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움직이는 사진’에 대한 신비로움이 줄어들자 세움영화관 관객들의 수는 점점 줄었다. 그리고 결국 지금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그는 오늘도 세움영화관 사무실에서 고민에 빠졌다. 수년간의 재정위기는 그를 빚쟁이로 만들었고, 영화관의 규모도 점차 줄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영화관을 팔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 인생의 많은 의미가 남아있는 영화관을 쉽게 팔 수 없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십니까?” 낯선 목소리가 사무실 밖에서 들려왔다.
“거 누구요? 영화관은 안 팔 거니까 돌아가시오.” 노인은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편지가 왔습니다. 양이 많아서 직접 드리려고요.”
낯선 이는 자신을 우체국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큰 가방 2개를 노인에게 전했다. 가방들 속에는 편지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노인은 편지를 가방에서 모두 꺼낸 뒤, 우체국 직원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편지들을 뜯어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그 편지들은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편지들이었다. 누군가가 세움영화관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고,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편지에는 화려했던 시절의 세움영화관을 기억하는 노인들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다는 청년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들이 적혀있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던 노인의 눈은 이내 붉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우직한 성격의 노인은 결국 얼굴을 감싸 쥐고 속절없이 눈물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