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역설, AI와 대실업의 시대

정해진 미래를 덮친 뜻밖의 파도

by 천시로

2000년생 63.5만 명.

2001년생 55.5만 명.

2002년생 49.1만 명.


통계청에서 발표한 연도별 출생아 수이다. 이 짧은 숫자에는 한 국가의 미래가 담겨있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2016년에 출간한 저서 <정해진 미래>를 통해 이 지표가 곧 우리의 운명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특히, 2000년에서 2002년 사이, 불과 2년 만에 15만 명의 출생아가 증발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감소가 아니다.

2026년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할 허리가 통째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기억을 거슬러보면 2001년생과 2002년생이 대학을 입학하던 몇 년 전, 지방 대학들의 도미노 폐교 위기가 연일 신문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당시 인사팀장이었던 나는 이 숫자들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학의 위기는 곧 기업의 위기로 이어질 ‘정해진 미래’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졸업하는 2024년부터는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확신했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인력 도입을 검토하며, 사람이 귀해지는 시대를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한가.


인구 감소의 속도보다 AI 발전으로 인한 채용 수요 감소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연일 대규모 감원을 발표하고 있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어도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람이 귀해서 대접받는 시대가 올 줄 알았던 한국의 채용 시장도 얼어붙었다.

HR 담당자 네트워킹에 가면 요즘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다. 어떻게 하면 인원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력을 효율화할 수 있을까. 각 사의 채용 규모는 이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쪼그라들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우리 회사도 신규 채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줄이는 것도 아니다. 아예 없애는 것을 고민하는 수준이다. 몇 년 전 외국인 인력 도입을 검토하던 내가, 지금은 채용 자체를 없애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면, 역설적인 그림이 보인다.


첫째, 인구 감소가 AI 충격의 완충제가 되고 있다.

만약 인구는 폭발하는데 AI가 일자리를 대체했다면, 우리 사회는 감당할 수 없는 실업 대란을 겪었을 것이다. 반대로 AI 기술은 없는데 인구만 급감했다면 국가의 성장 동력은 멈춰 섰을 것이다.


지금의 저출산은 역설적이게도 AI 시대로 넘어가는 충격을 흡수하는 사회적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 폭발 시대에 AI가 등장했다면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천운에 가까운 타이밍이다. 하지만 이러한 천운은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 관점인 것이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안위를, 우리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둘째, 고용 시장은 모래시계 구조로 재편된다.

중간층이 사라지고 양극단이 강화된다. AI를 도구로 활용해 혼자서 열 명, 백 명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하이퍼 스페셜리스트는 기업이 높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AI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복잡한 물리적 노동, 인간의 온기가 필요한 대면 서비스도 살아남는다.

문제는 그 사이다. 루틴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던 주니어와 중간 관리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이제 ‘관리'하는 사람보다 '실행'하는 AI와 '결정'하는 전문가를 원한다. 어설픈 관리 능력으로 연차만 쌓아온 중간층은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가장 먼저 휩쓸려갈 모래성일지 모른다.


셋째, 고용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구독'으로 바뀐다.

기업은 더 이상 신입사원을 처음부터 키우는 데 공을 들이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AI 활용 능력과 도메인 지식을 갖춘 인재를 프로젝트 단위로 구독하듯 매칭하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 직장은 더 이상 정년을 보장받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업이 인재를 소유하지 않고 구독한다는 것은, 우리의 계약서에 적힌 정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구독 서비스에 정년은 없다. 기업은 더 이상 사람을 사지 않고, 그 사람이 내놓는 결과값을 쇼핑한다. 쇼핑 장바구니에서 언제든 삭제될 수 있다는 공포가, 정년이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만들지 모른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이라는 ‘정해진 미래’를 맞이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AI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숨을 고를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이 유예 기간은 생각보다 짧을 것이다,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기업이 나를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거의 취업난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외로운 싸움이 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은 이 서늘한 질문들 앞에 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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