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실패했던 그녀가 지금은 대기업 강연자

95%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찾는 리더십에 대하여

by 천시로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과 은하가 보인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딥 필드 사진을 보면 하늘의 어느 한 점을 찍어도 헤아릴 수 없는 은하들이 가득하다.

Hubble Ultra Deep Field by NASA and the European Space Agency


그런데 놀랍게도 이 찬란한 빛들은 우주 전체 질량의 고작 5%도 되지 않는다.

우주의 나머지 95%는 빛을 내지도, 반사하지도 않는다. 바로 암흑물질(Dark Matter)과 암흑에너지(Dark Energy)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중력과 에너지가 이 우주의 질서를 결정한다.


사람도 이와 같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아는 것들, 예를 들어 학력, 경력, 짧은 면접에서 보여준 모습, 업무에서 드러난 단편적인 장면들. 그것들은 그 사람이라는 우주의 5%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잠재력,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한 내면의 95%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 <사토라레>처럼 타인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람들은 그의 진심을 알기에 그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적나라한 진실에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현실에 사토라레는 없다. 우리는 타인의 머릿속 치열한 전쟁도, 가슴속 깊이 품은 원대한 꿈도, 오늘의 고민도 알 길이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누군가를 보며 "그 사람은 이래"라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나머지 95%를 부정하는 오만을 저지르는 것일지 모른다.


나에게는 개발자 친구가 한 명 있다.

몇 년 전 그녀는 다니던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 그녀는 실패한 인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조회수가 없어도 꾸준히 유튜브 콘텐츠를 올렸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차곡차곡 쌓인 콘텐츠가 그녀의 무기가 됐다.

지금 그녀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강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연자다. 그녀를 내보냈던 회사보다 훨씬 큰 무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그녀를 내보냈던 HR과 경영진은 그녀가 가진 95%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본 5%의 데이터 안에서 그녀는 그저 효율이 낮은 개발자였을 뿐이다.


인사(HR)를 담당하는 나로서는 이 지점이 늘 두렵고 조심스럽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때로는 그 사람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나의 업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데이터와 판단이 그 사람의 모든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 순간, HR은 독단에 빠진다.

우리가 보는 성과는 그 사람이 가진 우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누군가는 맞지 않는 토양에서 시들어가고 있을 뿐이며, 누군가는 아직 자신의 궤도를 찾지 못해 방황 중일지도 모른다. 인사(HR)의 본질은 어쩌면 드러난 5%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95%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궤도를 찾아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내보낸 회사는 그녀의 5%만을 보았다.

나는 오늘도 나머지 95%를 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 95%의 가능성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HR 담당자가 가져야 할,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인 '겸손'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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