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자기 연민의 굴레
무기력함의 출처를 찾아서. 나는 삶에 극적인 기복도 없었던 나인데 왜 나는 이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그것’은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서 나를 조종하고 괴롭혔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이었을 지도 모른다.
GOP에 올라온 건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다. 어떠한 강요도 압박도 없었다. 후회할 거라는 말도 수십번 들었지만, 그 당시 나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기회가 되면 이 당시 에피소드에 관해서도 기록하고 싶다. 물론… 우습겠지만 후회를 아예 안했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 곳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후방으로 가서 편한 군생활을 하는 친구들 (물론 내 기준에서 그래보였던 거지,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테다.)이 부러웠고, 사회에서 자기 꿈을 펼쳐나가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그들의 멋진 소식을 접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가파른 철책을 탔다. 춥고 잔인했다. 내 생에서 가장 우울한 겨울이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자연스럽게 뜸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외로움에 사무치는 날엔 내가 먼저 전화를 걸기도 했다.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그래도 네가 나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넌 치킨이 먹고 싶을 때 시켜먹을 수라도 있잖아,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날 돌보지 못하는 순간에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좋지 못한 상태였다. 어딘가 뒤틀려버린 사고를 갖고 산 채 15개월이 지났고, 그동안 아껴가며 모은 휴가를 한꺼번에 나왔다. 그게 지금이다.
그동안 시달렸던 스트레스들을 뒤로 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왔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말출은 행복이 아닌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양떼를 잃은 양치기 소년처럼 갈 길을 헤매는 듯한 당황스러움과 누군가 나를 꼭 지켜봐줬으면 좋겠는 외로움. 그것이 나를 완전히 뒤덮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한 것 같은 느낌. 그 고요함은 늘 날 따라다녔던 것처럼 익숙했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부대 안에서 보냈던 순간들까지, 매순간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삶에 그 어떤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오자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무력함의 출처를 찾아서 나는 나를 곰곰이 곱씹었다. 나는 무엇이 내 순간들을 망치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가.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이 단어를 내가 가진 특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나, 떠올린 순간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연민, 그게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엾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힘든 순간에 별 관심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내 존재를 찾으려고 했다. ”내가 동정을 갈망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어떤 이야기를 전할 때, 더 불쌍하게 들리도록 포장했거든.“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 한 구절에 등장하듯, 나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불쌍한 사람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난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에 비해 일이 잘 풀리는 편이었다. 군대에서의 일도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산의 정경을 자유롭게 누리고, 적은 인원들 사이에서 그런대로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나와보니 그 때만큼 마음 편하게 살았던 순간도 딱히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과거는 이렇게, 가끔 단기간에 미화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줄 몰라서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깨닫게 된 사실인데, 성숙한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을 수록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나쳐온 과거들을 미화하거나 더 격하게 표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것을 그저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일 수록 자신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그런 식으로 덮으려 애쓰는 거다. 그래서 SNS에 자신의 우울을 전시하고, 주변인에게 한탄하고, 그 굴레 끝에 자기 자신을 진정하게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과거는 그 한심한 특성과 무척 맞닿아있다. 그래서 건강한 정신이 여기에 정착하지 못한 것 같다. 지난 짧은 시간에 힘들고 고된 순간에 처하고도 어른스럽게 이겨내는 이들을 만났고, 나는 동정심과 외로움에 길들여지는 게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단 한 순간도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이나 부리며 추하게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하나쯤 각자의 고민을 쥐고 살아간다. 힘들었던 날에도 해는 진다. 내 고된 순간을 더 암울하게 포장해서 동정을 얻어봤자,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남의 인생일 뿐이다. 우울함의 안정감을 즐기는 것은 이겨낼 의지를 가지려는 것보다 훨씬 편하겠지만,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내 방의 불을 켜서 고독의 새벽을 즐기면, 그것은 야경의 일부가 된다. 나는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맛보며 내 나머지 부분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다. 건물 위 셀 수 없이 새어나오는 창문들의 빛처럼 아주 평범한 연민, 딱 그 정도만 남겨두고 싶다.
*이 글의 제목은 최엘비의 앨범 [독립음악]에 수록된 ‘살아가야해.’의 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군대에서 힘들었던 순간에 큰 위로가 되어 준 앨범이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