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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오 Feb 25. 2023

how to let go

잃는 것에 대하여

전역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흘려보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나에게 숙제일 것이다.


       전역하는 날 아침, 양구에 사는 알동기의 친구 차에 올라탔다. 낡은 모닝이었다. 차에는 Benny Sings의 Break Awa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는 올 일 없는, 참으로 지겨웠던 도로를 따라 떠나는 길 위에서였다. 어색하리만큼 여유로운 아침. 이 동네에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좋은 것들은 늘 금방 끝난다. 이 글은 어쩌면 그것에 관한 고찰이다. 끔찍한 일들은 매순간 일어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찰나는 순식간에 꺼져버린다. 그래서 가끔은 지금 느끼는 감정이 행복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릴 때가 더러 있다. 인생이라는 과정이 매순간 기쁜 순간의 연속이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럴 수는 없는 것인가.


         행복한 순간이기에 짧게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체감 상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왔다 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신 행복함이라는 것은 짧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은 한심하게도 감정에 쉽게 무뎌지는 존재다. 그래서 행복한 시간이 길면 어느 순간 그걸 행복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 순리를 알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게 너무 어렵다.


       아주 가끔, 불쑥 다가오는 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삶은 익숙하다. 이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가벼이 넘겨야 할 지 모르겠다. 사람도, 기억도, 내게 모두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아남았는데, 어떻게 잊을까.


       가끔은 내가 흘려보내는 것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일에 너무 연연하는 것 같아서 한심하다. 아직도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잃기 위해 남기다]에 남겨두면 언젠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쓴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고, 흔적은 흔적으로 덮고, 그러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태구 형의 음악처럼 영원히 깊은 곳 어딘가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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