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 무어가 아닌 마이키 매디슨인 이유

by 이구오

데미 무어가 아닌 마이키 매디슨인 이유



모 시네마 홈페이지에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작을 예측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예측 대상은 작품상, 감독상, 여우/남우주연상, 각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이렇게 총 6개의 부문. 재밌게도 나는 6개의 부문을 모두 맞췄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8개의 영화를 다 보지 못했기에, 무엇이 더 낫거나 좋았냐의 기준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분명히 '경향성'이 수상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영화 <아노라>였다. 경쟁작들이 각종 논란에 휘말리는 동안 오스카 레이스에서 착실한 행보를 이어갔기에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결과였다. <아노라>는 총 6개의 후보 지명을 받았고, 그중 작품상을 포함한 5개의 오스카를 가져갔다. 한국에서는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받고 있지만, 나에게는 작년에 관람한 모든 영화 중 최고였다. 재미와 작품성을 여유 있게 챙기는 션 베이커 Sean Baker. 그는 관객들에게 일침을 날리지 않고도 견해를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부문이 하나 있다. 바로 여우주연상. 영화 <서브스턴스> 데미 무어 Demi Moore는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개인적으로도 <서브스턴스>를 관람하고 나와서 든 첫 번째 생각: 데미 무어가 오스카 받겠는데? 스타로서의 성공은 과거의 영광처럼 보이는 현재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한 역할이었다. 특히 여성 투톱에,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액팅을 보여준 이 영화에 여우주연상이 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데미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오스카까지 그녀에게 넘어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 Mikey Madison이 수상하면서 분위기가 기울어졌고, 결국 마이키의 아카데미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인 만큼 데미 무어의 수상 불발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특히 <서브스턴스>는 호러 무비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마이키 매디슨이 데미 무어의 여우주연상을 ‘빼앗음으로써’ 이 영화의 서사가 완성되었다고까지 평한다. 무려 빼앗았다고 표현하면서. 과연 마이키는 여우주연상의 자격 미달인 것인가? 그저 어리고 예쁜 백인 여배우로서 총애받는 걸까.


<아노라>의 흥행률이 특히 저조한 한국에서 마이키 매디슨의 연기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OCN 생중계 당시 시청자들이 예측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데미 무어가 1위, 마이키 매디슨은 꼴찌였나. 영화 <아노라>는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상당 부분 공통점을 공유하는데, 여성 배우들의 사실적인 열연이 특히 그렇다. 바닥까지 찍은 백인 여성들의 동부 갱스터적인 액팅. 다만 다수의 인물을 따라 다큐멘터리처럼 극이 흘러가는 것을 관망하던 전작과 달리, <아노라>는 주인공 애니 Ani의 시선에서 정제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애니는 대다수가 공감하지 못할 특성을 가진 인물이다. 애니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이며, 억척스럽고, 동시에 어이없을 만큼 순진하다. 그런 그녀에게 설득당해야 하고, 동정해야 하고, 마침내 그녀를 응원해야 한다. 139분 동안 스크린에 애니의 감정이 닿지 않는 순간이 없다. 애니는 영화를 압도해야 했고, 마이키 매디슨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마이키가 연기한 애니는 젊은 여성 배우들이 기피할 법한 역할이다. 이 순간에도 성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드러내는 것이 옳은지에 관해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실제 필드에서 섭외해 온 비전문 배우라면 모를까,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한 여배우가 맡기에 잃을 것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애니가 돌연 조신한 요조숙녀의 역할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쉽게 몰입할 수 있을까? 배우의 실제 성격은 오히려 차분하고 우아한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간극은 더 커진다. 하지만 마이키가 아니었다면 <아노라>는 지금과 같은 색채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 스파클 Elizabeth Sparkle이라는 인물의 몰락을 담았지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수 Sue와 공유했다. 인물의 반쪽을 완벽하게 연기한 마가렛 퀄리 Margaret Qualley는 후보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역할의 임팩트는 분명했지만, 리딩 퍼포머의 역할은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다. 데미 무어에게 상이 갔더라면 그녀라는 스타를 트리뷰트하는 의미에 가까웠을 것이다. 또, 아카데미가 유독 인색하게 구는 호러 장르라는 점에서도 표를 잃었을 확률도 높다. 호러 영화에서 아이코닉한 연기를 보여준 여성 배우들이 아카데미에서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캐리>의 씨씨 스페이식 Sissy Spacek, <어스>의 루피타 뇽오 Lupita Nyong'o, <펄>의 미아 고스 Mia Goth 등이 그 예시다. 이런 관점에서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이 수상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을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 결국 아카데미의 경향성으로 수상 결과가 좌지우지될 뿐, 데미 무어라는 배우 자체가 외면당한 것은 아니다. 윤여정 배우가 남겼던 수상 소감처럼, 배우들은 각자의 영화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경쟁이 성립할 수 없다. 다만 마이키는 인물이 구석구석 파헤쳐지는 여성 원톱 영화에서 스트리퍼라는 난이도 있는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이들이 그녀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 보인다. 그녀가 발굴되지 않았던, 젊고 전망 있는 배우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다. 즉, 누가 더 낫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바라는 점은 데미 무어가 커리어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 만큼, 엘리자베스보다는 더 멋진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마무리는 인상 깊었던 데미 무어의 골든 글로브 수상 스피치의 일부이다.


In those moments when we don’t think we’re smart enough or pretty enough, or skinny enough or successful enough, or basically just not enough.
우리가 충분히 똑똑하거나, 충분히 예쁘거나, 충분히 마르거나,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혹은 그냥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I had a woman say to me, “Just know, you will never be enough.
어떤 여성분이 제게 말해줬어요, “알아둬, 넌 영원히 충분해지지 못할 거야.

But you can know the value of your worth if you just put down the measuring stick.하지만 비교를 멈춘다면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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