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나폴리탄화?
18회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에서 'Dynamite'라는 곡이 올해의 음악상을 받았다. 케이팝으로써 첫 HOT100 1위곡이었던 만큼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이 노래가 과연 '케이팝'인가? 이 노래는 (1) 전체 영어 가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2) 영국인 두 명이 전체 작사/작곡을 맡았고, (3) 뉴저지와 버지니아에서 프로듀싱 되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장르였던 디스코를 그대로 차용해서 만들어졌다. 이 노래를 과연 올해의 '한국 대중 음악'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케이팝은 무엇일까? 케이팝에는 장르적인 문법이 없다. 토대가 되는 리듬이나 악기, 형식과 구성이 부재하다. 그런 특징이 있어야만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흔히 아이돌 댄스 음악으로 대변되는 케이팝은 미국 대중음악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케이팝의 시초라 불리우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밀리 바닐리 Milli Vanilli의 'Girl You Know It's True'와 아주 유사한 곡이다. 지오디 G.O.D의 '어머님께'는 투팍 2Pac의 'Life Goes On'를 표절했다. (이 때문에 케이팝 장르의 뿌리는 블랙 컬쳐에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커진 요즘은 되려 훨씬 더 빠르게 북미 트렌드를 차용한다. 르세라핌 LE SSERAFIM의 'Smart'는 도자캣 Doja Cat의 'Woman'과 유사하고, 뉴진스 NJZ의 'Cool With You'는 핑크펜서리스 PinkPantheress의 'Just for me'와, 에스파 aespa의 'Whiplash'는 찰리 xcx Charli xcx의 'Guess'와 유사하다.
케이팝은 ‘장르’보다 ‘문화’에 가깝다. 단체 군무, 지속적인 변주 같은 특징적인 요소나, 응원법, 포토카드 같은 아이돌 팬문화 등이 결합된 문화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케이팝이라는 ‘음악’은 서구 주류 음악의 한국어 버전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펑크족들의 반항심이 펑크 록을 탄생시키고, LGBT 커뮤니티가 일렉트로닉 뮤직에서 하우스를 파생시켜 이끌어나갔듯, 음악 역사에서 장르란 기존의 여러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고 융합하며 탄생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케이팝은 장르를 재해석하거나 특색을 이어나가려는 의지 없이, 유행을 모방하는 기조만을 보이고 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케이팝이 어떤 장르인지 설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은 한국어 가사 뿐이다. 그러나 그 한 줌 같은 정체성마저도 전체 영어로 작사된 곡들이 등장하며 훼손되고 있다. 오리지널리티가 부재한 케이팝이 찾아내야 하는 것은 ‘대안책’이다. 잘 나가는 주류를 탈피하는 시도는 얼터너티브 록, 얼터너티브 팝으로 이어진다. 당시 제시된 대안책이 주류의 한 갈래가 되어 해당 장르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현재 케이팝을 모작하는 태국 팝이나 인도 팝이 특색을 갖추고 기세를 잡으면, 머지 않아 한류를 못 뛰어넘을 것도 없다. 애초에 케이팝이란 장르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내가 로제, 제니, 정국의 솔로 앨범에 실망한 이유이다. 그들의 스타성과 재능은 충분히 뛰어나다. 그러나 선두에 선 케이팝 가수들이 장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케이팝의 미래는 더이상 없다. 그들은 자기 앨범만 좀 잘 팔면 그만일지라도, 그 다음 스타는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케이팝 없이 그들의 인기는 지속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