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유명세가 업보로 돌아오는 순간

by 이구오

영화 베러맨 리뷰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황석희 번역가의 영화 취향이 나의 취향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업계의 유명인답게 충분히 가치 있는 추천을 전하곤 한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리아>, <챌린저스> 등과 함께 철저히 외면당한 <베러맨>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극찬하는 글을 남겼다. 영화제의 선택이 늘 옳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절대적인 지표로 삼지 말자. 테이크 댓이나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가 훅 높아졌다. 마이클 그레이시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베러맨>을 감상했다.


먼저 수많은 전기 영화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침팬지’일 것이다. 극 중 로비 윌리엄스는 시종일관 침팬지로 등장한다. 사람들 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침팬지라니, 우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출은 우려와 달리 오히려 몰입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전기 영화는 배우가 아무리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치장하고 흉내 낼지라도 현실과의 괴리를 깨끗이 지울 수 없다.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보일 때도 종종 있다.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비범한 인물의 세계를 새로이 체험시키는 것을 택했다. 과거에 대한 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데에도 침팬지라는 동물은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넵워스 공연 시퀀스에서는 그 효과가 절정에 이른다. 마치 침팬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영화처럼 수많은 침팬지와 전쟁을 치루는 로비 침팬지... 물론 많은 동물 중 침팬지를 선택한 이유는 사전 정보가 없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음악에 기대어 연출을 게으르게 끌고 가는 음악 영화도 더러 있다. <베러맨>은 음악을 체리 얹듯 판타지적 연출과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특히 Rock DJ 시퀀스는 따로 잘라내 뮤직비디오로 활용해도 될 만큼 완성도 높다. 이 밖에도 음악을 활용한 장면들은 음악 영화로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브리티시 팝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나의 취향을 의심케 할 만하다. 음악에 가려져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수중 시퀀스는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을 법한 전율을 준다. 전기 영화가 주로 건들기 어려울 극적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얼마나 로비 윌리엄스를 이해하고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로비라는 캐릭터가 마치 가상 인물인 듯 구석구석 파헤쳐졌다. 그 덕에 그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에도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로비 윌리엄스라는 스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다. 사실 그에 대해 더 잘 알았더라면 영화를 즐길 수 있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위대한 쇼맨>이라는 전례가 있듯이, 지나치게 미화된 요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나르시시즘의 극치라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화이자 음악으로써 즐겼으니 더 깊게 파고들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과오를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포장하는 결론이 비판의 여지가 될 수 있다. 그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이 ‘better men’이 되는 건 그들의 몫이 되어버리니. 나만 훌훌 털어버리고 새 삶을 산다는 건 결론이 주는 메세지와는 무척 다를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니, 로비 윌리엄스도 그런 삶을 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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