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아트라하시스가 될 용기가 있다면

by 이구오

영화 플로우 리뷰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거란 생각은 낡은 아이디어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붙잡지 못하는 애니메이션은 자격미달이다. 이를 테면 픽사의 <업>이나 <소울>은 아이들을 울리지만, 어른들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요소들로 가득하다. 훌륭한 애니메이션은 제로섬 게임과 같다. 드림 웍스의 역작인 <와일드 로봇>은 게임의 승리작이라고 볼 수 있다. 섬에 떨궈진 야생 로봇 이야기는 픽사의 위상을 위협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대진운이 부족했다. 라트리바의 어떤 다크호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00% 블렌더로 작업한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를 뒤늦게 관람했다.


각종 영화제 수상과 주변인들의 추천 이후에 봐서 그럴까. 감동의 깊이가 기대를 미처 채우진 못했다. 사실 영화 속 등장동물(?)들의 행동은 판타지에 가깝다. 지나치게 의인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우원숭이는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카피바라와 뱀잡이수리는 사고력이 인간 뺨친다. 대사도 포기하고 동물 소리를 삽입했으니 다큐멘터리 같은 현장감을 기대했건만. 플롯의 편의성을 위해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한 느낌이다. 하지만 고양이 석상 위에서 바라본 석양, 꼭대기산에서 마주한 죽음의 형상, 원숭이의 아지트 등 애니메이션을 백분 활용한 구성이 눈에 띈다. 거대 자본을 자랑하는 화려함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만약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 동물들만 남았다면, 인간이 놓쳐온 무언가를 그들만큼은 갖고 있길 바란다. 영화 속 동물들이 약간의 인간성을 모사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계몽을 위한 판타지다. 인간들이 <플로우>처럼 모였다면, 그냥 돛단배 위 <슬픔의 삼각형>이 됐을 게 뻔하다. 그러나 동물들은 이해 관계가 전혀 없는 다른 종의 동물을 구하고, 기억하고, 소중한 것을 포기해서라도 다시 뭉치기도 한다. 영화의 플롯은 전 지구상에 퍼져있는 홍수 신화를 동물들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오로지 인간의 관점으로 쓰여진 구전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플로우>는 현대 인간들이 서로를 도울 아트라하시스, 혹은 용감한 고양이가 될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바야흐로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이다. 디즈니가 아무리 주춤했다고 해도, <인사이드 아웃 2>를 2024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집어넣었다. 그 뿐일까? 디즈니의 파라마운틴의 <소닉> 시리즈, 일루미네이션의 <슈퍼배드> 시리즈, 드림 웍스의 <와일드 로봇>, 소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까지. 애니메이션은 이미 정점에 이르렀고,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지겹도록 목격했다. 조만간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소규모 제작사 사이의 간격을 AI가 매꾸는 시대가 올 것이다. <플로우>는 그 경쟁 사이에서 모두가 잊고 있었던 무언가에 대해 얘기한다. 음, 물론 기술은 아쉽지만.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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