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글자 제목을 가진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있다. 물론 괴물, 화차, 곡성, 버닝 같은 좋은 작품도 있지만, 철 지난 유머로 점철된 양산형 영화도 많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보는 것이 싫어, 웬만해서는 후기나 요약, 심지어 시놉시스도 안 보고 영화를 관람한다. 그러나 제목은 모르고 볼 수 없는 요소이지 않은가. 결국 편견에 사로잡힌 채로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편견에 확신을 더해주고 나오는 나쁜 예시가 되어버렸다.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 주연의 영화 <야당>을 관람했다.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영화를 누가 재밌다고 생각하기는 할까? 마약 조직과 정치 카르텔의 조합, 너무 뻔하지 않은가? 순진무구한 주인공들이 마약 중독자와 권력에 매달리는 정치인을 처단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플롯을 갖추고 있다. 의리 있는 언더독 주인공은 배신당하지만 통쾌하게 복수하는... 아, 지겨워. 문제는 이런 식의 영화가 정말 오락 영화로써 작용하는가에 달렸다. 짧은 액션 씬에서 현장감을 느끼긴 했으나, 전개가 뻔히 예상이 가는지라 긴장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이 영화의 메시지-정치 비판이나 마약 이슈-를 전달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누가 오락적으로 재밌게 봤으면 다행이긴 한데, 그들이 이 모든 킬링타임용 오락 영화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 정기적으로 영화를 볼지는 의문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이런 류의 영화는 이미 수천 편 있다.
나름 몇 번 플롯을 꼬아보려는 시도가 보이긴 했다. 하지만 펼쳐놓고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결국 똑같은 이야기이다. “이럴 줄 알고~” 식의 유쾌한 척하는 한국식 반전은 이제 너무 예상 가능하다. 왜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은 항상 마스터마인드인 것일까. 왜 모든 일을 미리 다 예측하고, 중간에 한 번 실패를 겪는 척하지만, 성공적으로 플랜 A가 성사되는 것인가. 솔직히 ChatGPT가 써준 시나리오 같았다. 클럽, 마약, 집단성교 씬도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감각적이지도 않고, 그냥 저급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 자체가 일관돼서 아무런 요소도 색다르게 살리지 못한다. 이 와중에 배우들은 주조연 가리지 않고 연기를 참 잘해서 왠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야당>은 비슷한 카테고리의 영화 중에서 나름대로 잘 만든 영화다. 특히 조명의 활용, 후반부 반전을 위한 청각적인 복선 등은 호기롭게 느껴졌다. 클리셰를 비트는 듯 하다가 결국 클리셰를 따라가는 구조도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범죄도시> 3, 4편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단점들을 모른 체하고 마냥 즐길 수 없는 영화였다. 이야기, 캐릭터 설정, 반전, 세트 구조가 너무 많이 봐온 것들이어서, 지금 당장 AI가 완벽하게 구현하고도 남을 만큼 데이터가 쌓여있다. 분명히 더 나은 기획과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낡은 이야기로 고착화된 시장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 잠깐 잘 팔리는 영화는 마침내 시장을 몰락하게 한다.
★★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