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일본 영화를 떠올리면 연상하게 되는 이미지가 있다. 이를테면 우울한 정서와 위태로운 청춘. 그리고 대개 그 불완전함은 유서 깊은 (어쩌면 지리적인 특성에서 비롯한) 되물림이 근원지이며, 저항하려 하면 할수록 기이한 사람이 되어버린 채 사회에서 도태된다... 내가 본 일본 영화는 대체로 이런 식의 정서가 깔려있었다. 인물들이 느끼는 피해자 의식은 전범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어, 한 번도 일본 영화를 온전히 재밌게 보지 못했다. 영화 <해피엔드>도 마찬가지로 그 프레임을 넘지 못했지만, 꽤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해피엔드>는 근미래의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일상에서 관리를 목적으로 AI를 적극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과 큰 차이는 없다. 대개 근미래를 다루는 영화들이 배경 설명에 긴 러닝타임을 할애하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세부적인 설정은 뒤로 한 채, 주인공 2인을 포함한 친구들의 우정과 반발심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시스템의 문제를 느낀 인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반항한다. 하지만 시스템 내부에 들어와 있을 때 인물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현실에 대한 저항과 순응의 과정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현실에 타개해야만 하는 소수자와 그냥 즐기며 살아도 될 권력자 사이의 간극은 우정을 뒤흔들게 한다. 하지만 제목처럼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청춘물처럼 보이는 마케팅과 달리 정치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시종일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한 영화는 아니며, 우정보다는 분열에 방점을 찍어야 할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 내부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현대 한국에서도 유사한 문제와 상황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계엄과 탄핵 이후로 좌우로 극심하게 갈라지는 정치적 상황이 코우가 사는 도쿄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시스템 내부에서 우리는 문제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가까이 느껴지는 만큼 시사점이 충분한 영화였다.
데뷔작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해피엔드>의 퀄리티는 좋은 편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일본 영화 시장은 기반이 잘 마련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질적인 일본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영리하다. 또, 대단히 신선하진 않지만 트렌드에 충실한 연출도 좋았다. 직각으로 선 노란 스포츠카나 클럽의 이미지, 테크노 음악의 활용, 육교에서의 카메라 워크가 그러했다. 특히 히다카 유키토 배우의 비주얼은 미남 프레임 없이도 눈에 띄었다. 화보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연기도 잘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