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어느 순간부터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몸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니며 불행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모든 소리가 크게 울리며 옷이 불편해졌고 빛이 번져 보였다. 매끈한 유리나 바닥에 비친 햇빛이 유난히 눈에 퍼져서 모든 곳을 가리고 싶었다. 이는 점심을 먹으면서 점점 심해지더니 오후에는 기어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꽉 끼는 모자를 쓴 것처럼 뒤통수부터 구레나룻을 지나 이마까지 지끈거렸다. 커피를 마셔도 잠이 쏟아졌는데 “에라, 모르겠다” 누워보니 온 관절이 뻐근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매번 가는 카페에 펜과 노트만 덩그러니 들고 가서 구석에 앉아서도 마찬가지였다. 재즈 느낌에 조용히 튕기는 기타 음을 듣다가도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짜증이 솟구쳤다. 아이를 둔 그녀들은 “우리 애”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런 이야기만 귀에 쏙쏙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커피는 유난히 뜨거웠는데 하필 햇살이 쏟아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깥은 가을바람이라기에 쌀쌀했지만 온실처럼 점점 데워지는 공기, 거기에 하필이면 옷도 온통 검은색이었다. 창틀에 비친 빛줄기도 하필 눈으로 쏟아지는데 블라인드는 내려가질 않고 자리를 옮겼더니 노랫소리보다 “그랬더니 글쎄” 하는 이야기가 더 크게 울렸다. 모든 것에 옮겨 붙는 짜증, 날짜를 보니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바로 우울이었다.
감정 그 자체로 쓰는 것을 지양함에도 ‘우울’이라 바로 쓴 것은 그 녀석에게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훨씬 나아져서 요즘은 한 달 간격으로 찾아오곤 했다. 대학에 있을 적에는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것으로 대충 때울 수도 있었다. 당시 만난 어느 선배는 자신을 괴롭히는 생리통과 비슷하다며 묘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 고통을 직접 겪어보질 못했으니 나 또한 애매하게 웃었다. 자신이 아프면 약을 먹듯 나도 약을 먹으니, 결국 같은 것이라고 멍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무튼 조금 있으면 좋아지겠지.”
어딘가 열린 틈으로 진딧물처럼 동글동글하면서 앙증맞은 날개를 퍼덕이는 녀석이 노트 위로 올라왔다. 옥색 노트 커버에 연두색 점이 뽈뽈뽈 움직이기에 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마저도 짜증이 날까, 후 불어 주었다. 분명 하루에 3번은 펼쳐서 한 시간씩 일기를 쓰는데 엊그제부터 텅 비어있었다. 오늘 날짜와 시간을 적고 펜을 집었다. 이미 신호가 왔다는 생각과 지금을 어떻게든 흘려보내야 하고, 무엇보다 커피가 식었더니 산미가 훨씬 강해져서 별로라는 생각. 목덜미를 지지는 햇볕을 버티며 문장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 발버둥 치는 것보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보고 있으면 진정이 되곤 했다. 무엇보다 우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아주 비슷한 꽃들이 엉성하게나마 한 다발로 뭉뚱그려진 것과 비슷하다. 모두 칙칙하고 어둡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형태부터 꽃잎의 질감과 온도까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서 하나가 바로 짜증이었다.
바로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짜증, 이 녀석은 아주 시끄럽다. 앵앵거리는 목소리와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녀석만큼 시끄러운 것들이 보였다. “시발 시발”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나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통화를 하는 아저씨, 여전히 시끄러운 카페 구석 자리처럼. 녀석은 동시에 눈은 마주치지 않으려 어깨에 착 붙어있기 마련이고,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시선을 따라 움직여버리는 것이다. 혹시라도 평소 싫어하던 것이 눈에 들어오면 짜증은 순식간에 회오리바람처럼 주변 모든 것을 쓸어 올려서는 시야를 가려버리는데, 그때가 제일 문제였다. 먼바다에 휘몰아치는 용오름이라도 되면 짠 내음이 풍기고 물고기 한 마리도 머리 근처에서 퍼덕거렸다. 가을 풀숲이라 하면 낙엽과 모래 먼지, 이상한 비닐봉지가 한데 뒤섞였다. 당연하게도 영화에서 꽃잎이 떨어지듯 아름답거나 매혹적이진 않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그 속에 푹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무료함이기도 하고 공허함이기도 한 아이가 작은 돌을 발로 건드리고 있었다. “다 쓸모없어”라며 삐진 것처럼 발끝만 보다가 힐끔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고개를 돌리는, 부끄럼 많은 녀석도 우울 사이에 있었다. 나는 가끔 녀석이 찾아오면 반갑기도 했다. 모두 떨쳐버리고 싶다는, 아주 작아서 비밀스러우면서도 손에 쥔 얼음같이 차가운 것. 한겨울 열린 창문처럼 작은 소리로 툴툴거리는 녀석은 항상 눈에 보이면서 외진 곳에 머물렀다. 명화에 숨겨진 인물처럼 작고 선명하며 어두운 것이다. 어느 때엔 아이같이 심술이 나 있다가도 어느 때엔 한참 늙은 금붕어처럼 뉘엿뉘엿 움직이곤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식은 커피를 호록 넘겼다. 돌아가는 길에는 빵집에 들렀다.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고 텅 빈 냉장고가 새삼 쓸쓸하게 보인 것이다. 혼자 사는 것치고 깔끔하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보니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우유식빵과 소금빵, 작은 카스텔라도 하나 골랐더니 우유가 떠올랐다. 마침 건너편 동네 슈퍼가 있었다. 우유와 빵, 양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서 방으로 향했다. 5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그림자가 길어지다가 서늘한 그늘이 되고 있었다.
오늘처럼 마법, 그보다 저주에 걸린 날에는 약을 먹곤 했다. 아무리 가을이라도 잠에 쉬이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는 가을과 겨울에 잠이 많아졌는데, 겨울잠이라도 자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요즘 마늘이 보이면 무조건 챙겨 먹는다. 마늘빵이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술을 마실 적에는 진탕 취한 상태로 떠돌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수면 유도제로도 충분했다. 그것도 한 알을 다 먹으면 반나절이 아니라 내일 하루 내내 잠에 취해서 일상이 더 망가졌다. 허리도 뻐근한데 몽롱한 상태로 내일 저녁에야 일어나면 또 새벽에 깨어있을 것이 눈에 선했다.
작고 단단한 그것을 반으로 똑 자르니 부스러기가 책상에 흩뿌려졌다. 내일의 나에게 청소는 부탁하기로 했다. 약간 쓴맛이 혀뿌리에 머물다가 물에 씻겨 내려가고, 냉랭한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린 채 가만히 누웠다. 하루 내내 붙어있던 녀석들도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작년부터 어차피 함께 걸어갈 녀석들이라 여겼던 탓인지 섭섭하기도 했다. 내일이면 책상 아래와 노트 뒷면이나 책장 한 구석에 몸을 말고 조용히 숨어있겠다.
그리고 또 한 달이나 지나면 다시, 분명 다시 찾아올 것이다. 칭얼대거나 소리를 질러대며 한시도 조용히 있지를 않을 것이다. 올해면 벌써 십 년인데 매번 비슷했기 때문이다. 참 한결같기도 했다. 손과 발가락 끝마디부터 저릿한 것, 무거운 잠결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말이 없어진 녀석들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살짝 끌어안았다.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으면서 말랑한 팔뚝과 어깨 아래로 느껴지는 따뜻함.
“사실 오늘, 조금 반가웠어.”
나도, 살짝 웃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