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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Nov 10. 2022

반짇고리

 발이 아주 여럿 달린 것처럼 간지러움이 온몸을 타고 다녔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내내 얕은 곳곳을 헤매던 선영은 조용히 뒤척이며 몸 곳곳을 긁을 수밖에 없었다. 종아리 한쪽이 가렵다가도 발목에서 뒤꿈치와 허벅지가 지릿했고 등에서 시작된 그것은 옆구리를 지나 아랫배로 향했다. 배꼽 옆을 지나갈 찰나에서야 그녀는 모기를 내려치듯 재빠른 손놀림으로 모기 물린 곳을 대하듯, 그것을 잡을 수 있었다. 정돈된 손톱이 살을 긁으며 책장 넘기는 것과 얼핏 비슷한 소리를 냈다. 간지러움은 그 자리에서 짓이겨지듯 사라졌고 이내 옅은 따가움이 퍼지며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드니 새벽 4시 하고 반. 며칠째 4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깬 것이다.

 새벽 한가운데치고는 너무 밝은 화면을 어두운 끝까지 끌어내리고 팔뚝을 스치는 간지러움을 잡으려는데 선영은 유난히 밝은 천장을 새삼 바라봤다. 그 순간 아래턱 끝부터 왼쪽 귀밑으로 이어지는 통증, 시린 것 마냥 빠르게 훑음에도 온몸을 전율케 하는 무엇을 느꼈다. 귀와 관자놀이를 거쳐 정수리와 뒷목으로 퍼지는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아주 반듯하게 떨어졌다. 이미 잠은 다 날아가 버렸기에 그 자리에서 일어난 선영은 책상으로 향했다.


 타지, 고시원보다 살짝 넓은 정도의 방에는 작은 침대와 그 침대만 한 책상이 딱 붙어 있었다. 탁, 스탠드를 켜면 먼저 책 몇 권이 키와 색에 맞춰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어두울수록 벽 쪽에 있었다. 모두 한 친구를 따라 얼떨결 따라갔던 독서 모임의 흔적. 따로 챙겨 읽지는 않았으나 해야 할 것이라면 악착같이 해내던 선영은 200페이지 남짓의 책에 있는 모든 문장을 뜯어보며 준비했다. 죽죽 줄을 긋고 메모도 붙이며 포스트잇으로 곳곳에 표시를 남겼다. 그래서 선영은 모임 자체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사는 게 바쁘고, 이 정도만 읽어도 되는 게 책이라고. 그렇게 남들 대충 읽고 하는 게 싫다면 네가 나가지 그래?”

 그 모임에서 비밀리에 사귀고 있다는 남자와 꼭 붙어서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며 선영은 토막 난 한숨을 뱉고는 말했다.

 “하긴 너는 본래 목적을 달성해서 나같이 고리타분한 년이 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겠네. 공공연히 다 알고 있는 비밀처럼 말 같지도 않은 역할 놀이나 하며 잘 지내라. 끼리끼리 모여 산다는데 네 남친이랑 잘 어울리긴 하네!”

 그, 친구였던 여자는 머리채를 쥐어 잡으려 향해 달려들었다. 다행히 선영은 당시 짧은 머리였고 몸놀림이 느리지 않았다. 붉으락 푸르락 화장마저 뚫고 나오는 낯빛과 뒤틀린 입술로 달려들던 그녀는 쿵 소리를 내며 테이블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여파로 잔이 넘어졌고, 나자빠진 그녀의 머리 위로 카페라테 몇 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모습이란! (선영의 것만 제외하면 테이블에 책이 한 권도 없었는데 그마저도 재빠르게 들어 올린 상태였다) 모서리가 딱 맞아떨어지는 책상 구석을 볼 때마다 선영은 눈 밑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며 조용히 웃을 수 있었다.

    

 그 앞에는 어머니에게 받아온 반짇고리가 열려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뭐라도 하겠다고 꺼냈던 것을 기억해낸 선영. 약간 미끌거리는 천조각들과 색색이 실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분홍색이라기엔 바래다 못해 희끗해진 안감과 자주 여닫혀서 그런지 군데군데 튼 곳을 지나면 뚜껑 부분, 봉긋한 것에 바늘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겠으나 스탠드 빛을 받으니 작게 반짝였다. 달칵거리는 잠금쇠와 손을 하도 타서 반질반질해진 겉면과 모서리. 그 옆에는 장난감 병정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실패들이 늘어져 있었다. 검은색, 흰색, 노란색, 검붉은색.


 새로운 취미로 이번에는 손바느질을 해보겠다며 집에 찾아갔을 때였다. 그것은 옷장 아주 구석진 곳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어려서부터 사용한 것이라며 비싸지 않지만 소중한 것이라 했다.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기 한참 전부터 당신의 것이었다고, 때가 되면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며 언제나 옆에 있었다고 하였다.

 “여섯 살이었나, 집을 온통 뒤지다가 이거 찾았는데 바늘이 가득 들어있다고 하니까 무섭다고 도망갔잖니.”

 분명 선영은 여느 아이들처럼 주사를 무서워해서 바늘이란 말만 듣고도 반짇고리를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대했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주사라 하면 질색하며 어떻게든 피하려 했는데, 혼자 부끄러워하던 선영이었다.

 “네가 태어났을 적에는 어느 집에나 있던 건데, 손재주 있는 엄마들은 이걸로 뭐든 만들었단다. 생각해보니 네 배냇저고리도 이걸로 만들었는데...”

 어머니는 그때가 떠오르는지 반짇고리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무릇 젊어서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한다고, 당신처럼 늦으면 찾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천하의 강 여사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요!”

 애써 웃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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