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이 없는데.
가장 먼저 든 걱정이었다.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당신이 가장 작은 방을 쓰겠다고 했다. 평생 살아온 시골집과 이런저런 농사를 지어오던 몇 마지기 땅이 모조리 어느 공단 부지에 속하며 팔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짐도 얼마 없으니 내가 작은 방을 쓰마.”
뭔가 비어있는 눈빛으로 정면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조수석 창문을 살짝 내리며 말했다. 살짝 바람이 새는 듯한 목소리가 새삼 건조하게 들렸다. 3월임에도 유난히도 추적거리던 봄비가 방금 멎었는지 습한 공기가 얼굴을 가로질렀다. 움트는 흙내와 비릿한 비 냄새가 뒤섞여서 생생하면서도 무거웠다.
석 달 전에 이 결정을 하고서도 이런 분위기였다. 더위는 참아도 추위라 하면 몇 겹이고 옷을 꺼내 입으시던 아버지가 헛헛한 차림으로 마당을 거닐던 모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그 집과 땅에서 살겠다며 고집부리는 아버지는 이미 허리가 조금 굽으셨고 다리가 불편하셨다. 걸음은 이전보다 느려졌고 검버섯이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5년은 족히 혼자 지내셨으므로 많이 여위기도 했다. 그날은 늦은 아침이었다. 햇빛과 흙에 얼마나 닳았는지 짙은 고동색에 반들거리는 눈가가 산그늘을 해치고 쏟아지는 빛을 튕겼다. 나지막한 평야로 흩어져 내려가는 골짜기 언저리에 집이 있었다. 점심은 되어야 해가 드는 마당이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부터 살다가 내가 태어난 집. 지금까지 버틴 그곳은 묵직한 감나무 두 그루와 엉기다 못해 하나가 되어버린 담쟁이들, 그리고 겨울이면 언제나 구석진 응달에 눈이 쌓여 있었다.
“살아야 얼마나 더 산다고, 가봐야 집구석에 들어박혀 있을 거 아니냐. 늘그막에 얹혀살아야 짐만 되지.”
구겨 신은 아버지의 신발이 시멘트 바닥에 칙칙 끌렸다.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지금이라도 더 보자고, 같이 병원도 좀 가면 얼마나 좋냐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손주도 대학이 뭐야, 군대도 갔다 왔으니 다 큰 거 아니냐고, 이제 함께 살 정도 여유는 있다고, 텅텅 빈말을 괜히 덧붙였다. 뒷짐 지고서 마당 한가운데, 담벼락과 마른나무 그늘 사이에 선 아버지는 먼 하늘만 봤다. 구름 한 점 없었고 새벽같이 퍼런 하늘이었다. 호 하면 후 입김이 나는 날씨에 아버지는 흙이 잔뜩 묻은 잠바 하나만 걸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몸과 굽은 허리, 나뭇가지처럼 가만히 꼼지락거리는 아버지의 손가락. 조금 도톰한 패딩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어깨에 걸쳐드리자 그제야 돌아보셨다. 나는 말없이 그 마른 손을 잡았다. 거칠지만 차갑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나는 되물었다. 아침에 밤 한 톨을 받거든 저녁이 되기 전까지 똑같은 밤을 하나 구해다가 되돌려주는 아버지였다. 밤이 없으면 널어놓은 곶감이라도 쥐어다 주던 고집머리에 자존심 하나는 타고난 분인데 아무리 딸 집이라 하더라도 그냥 들어와 사실까, 나 같아도 그러진 않았겠다고 생각이 뻗쳤다. 슴슴하던 어머니와 섞인 나조차 고집 하나로는 알아줄 정도인데 그게 아버지의 반이나 될까. 그래서 당신이 평생 일구고 살아온 땅을 내 말대로 팔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돈보다는 그 결심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얇은 틈으로 습한 바람이 휭휭 들어오는데 아버지는 별말이 없었다. 차가 덜컹거리자 뒷좌석에 가득 찬 짐들이 덜그럭거렸다. 어머니 유품과 옷, 그 사이사이 끼어있는 잡동사니들 소리였다. 오십 년간 쌓인 살림살이에 비하면 확실히 줄었지만 작은 방에 다 넣을 수는 없는 양이었다. 무엇보다 아들, 승희가 남겨놓은 짐이 가득 차 있었다. 군대를 마치고 얼마 전에 복학한 아들의 방을 내 맘대로 정리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 싫었다. 이혼한다며 별별 난리를 다 치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인서울 대학에 가주었고, 말수는 적어도 내가 바쁠 때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아들이었다. 장학금도 한 번 받아왔더랬다. 그러니 나는 그 방을 아버지가 쓰시지 않았으면 했다. 어쩌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에 들르더라도 쉴 곳이 있으면 좋으니까. 결국 그 방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안방을 내어드리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말고 안방을 쓰셔요. 이 나이에 같이 쓰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지금도 거실에서 종종 자니까, 그게 나한테 더 편하기도 하고.”
나는 지난번처럼 번지르르한 말로 둘러댔다.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코가 시큰거릴 정도로 막막했지만 별다른 수가 있나, 하며 히터를 틀었다. 봄비는 올 때 따뜻하다 싶어도 지나고 나면 제법 추워지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슬쩍 보니 창에 동그랗게 김이 서리도록 바깥만 보고 계셨다.
“6월이면 전세가 끝나서 그때까지만 이렇게 지내고, 조만간 집 보러 다녀봐요. 아버지 땅 팔아서 돈도 많으니까 보태서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그제야 아버지는 그러자, 하시며 창문을 닫았다. 히터 바람을 타고 가벼운 방향제가 비린내를 지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