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작은 참새 한 마리였다. 약국에 들렀다가 돌아오며 집 근처 화단을 지날 적이었다. 방금 죽은 것처럼 싱싱한 그것은 머리를 박았는지 선명한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뻗은 다리 위로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조금 있었고, 날개에는 선명한 깃털이 보였다. 아무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들 새들은 기척만으로도 도망가는지라 신기할 정도였다. 작지만 날카로운 부리와 살짝 감긴 눈은 마치 인형처럼 보였다. 투명해서 유리에 머리를 박고 죽는 새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니면 어디서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 골목이라지만 지나다니는 차에 들이받아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통수에서 울리는 경적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빽! 질러대는 소리는 본래 시끄러울 것인데 낮은 건물 사이에 튕기기까지 하며 귀로 파고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골목인데 다닥다닥 주차된 차들을 피하려다가 내가 있는 곳까지 다다른 쥐색 소나타. 며칠 전에 내린 눈 때문인지 꼴사납게 얼룩져 있었다. 나는 화단 쪽으로 조금 더 붙어 섰다. 치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걸고넘어질지 모를 세상이니까. 그러자 낮게 달달거리는 그 차는 꿈틀거리더니 곧 골목을 빠져나갔다. 어두운 창 너머에서 중얼거리는 듯한 실루엣이 스쳤다. 그 뒤로는 전봇대와 바닥에 붙어있는, 지금 당장 노른자위 땅에 투자하라는 광고지와 새하얀 차가 한 대 있었다.
“널찍한데, 참. 괜히 시비야 시비는.”
몇 마디 중얼거리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담배꽁초와 뭐든 들어있었을 비닐 포장지와 참새 따위, 보이지 않았을 뿐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이었다. 광채가 날 정도로 깨끗한 BMW와 애를 쓰며 피하려다가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어쩌면. 가족은커녕 어떠한 관련도 없는 것을 마음에 담아둬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뒤돌며 “다음에는 콱 긁혀 버려라” 하면 되는 일이다.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것은 그리고 며칠이 지난날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겠다고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5시 즈음부터 해가 떨어지면서 쌀랑해지는 바람에 나는 몸을 한껏 움츠리고 그 골목을 걸었다. 쓰레기가 늘어나거나 줄어들고 주차된 차들이 조금 바뀌거나 눈이 쌓였다가 녹는, 매번 달라지지만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골목. 그 한구석 화단에 새하얀 고양이가 보였다. 멀찍이 앉아 노려보거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지나가는 녀석이 아니었다. 널브러진 머리와 곧게 뻗은 다리, 하얗다 보니 유난히 더러워진 털을 보니 사람 손을 탄 녀석은 아니었겠다. 이번 겨울 유난히 추웠으니 고양이 몇 마리 죽는 것은 별것도 아니었다.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좋아할 사람들도 있거니와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내가 거둬 키우기도 힘드니까.
“정 키우고 싶거든 네가 돈 벌어서 나간 다음에 키워라. 밥 먹이고 똥 치우고 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동물병원 한번 갔다 하면 돈 십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라잖니. 귀엽고 예쁜 게 돈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반찬통 뚜껑을 맞춰 닫으시며 말했다. 나는 “그런가” 풀 죽은 소리를 내며 빈 그릇을 치울 뿐이었다.
“무엇보다 네 할아버지가 집안에 동물 들이는 걸 그렇게 싫어하시잖니.”
“엄마한테는 아빠인데, 나처럼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혼자 계실 때 심심하시지도 않을 거고. 혹시 몰라, 치매 예방에도 좋을지.”
탁! 반투명한 밀폐용기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어휴,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고집 하나는 대단하신데.”
“하긴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나보다 엄마가 더 알겠지.”
그래도 한번 얘기해 보지, 생각만 하며 물을 틀었다. 엄마가 야간에 일하는 날이면 저녁 설거지는 내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고민하던 때부터 그래왔다. 그즈음 언젠가 엄마처럼 간호사가 되겠다, 했다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들었더랬다. 수세미가 거품을 내며 사각거리고 수저와 접시가 달그락거린다. 엄마는 냉장고를 한참 들여다보며 통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다. 김치며 남은 반찬들이 한가득 들어찬 냉장고라 딱히 여유가 없을 터였다. 하나를 넣으려면 다른 하나를 꺼내 들어야만 했고 무엇이든 버리려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서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겠다 했을 적에도 비슷했다. 이리저리 계산해서 좋고 나쁜 것을 고르기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표정. 살짝 다문 입술과 조용히 꽂힌 시선, 엄마의 차분한 눈매. 나는 그게 정말 좋았고 또 미안했다.
한참 같은 몇 분이 지나서 냉장고가 칭얼대기 시작할 즈음 엄마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 모든 통을 넣을 수 있었다.
“언제 날 잡아서 싹 정리해야지, 난장판이 따로 없네.”
그리고 시간을 한번 보더니 아이고! 급히 준비를 마치고는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셨다. 시간이 되면 냉장고를 정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