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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Sep 25. 2022

걱정

 “약 먹으면 훨씬 나아진 다니까,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 아니면 상담이라도 받아 봐. 전문가한테 물어볼 수는 있잖아.”

 그녀는 이런 권유를 정말 싫어했다. 나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심리 상담과 약물치료를 권했지만 그녀는 항상 짧은 욕으로 답했다. 무례한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다른 사람의 정신 상태를 판단하며 치료를 권한다는 말인가! 살이 갑자기 찌거나 빠지고 잠을 못 자서 수척한 얼굴을 보여도,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급하고 과감한 일들에 뛰어들거나 죽고 싶다는 말을 한숨처럼 한다 하더라도 권하기는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러하다. 울적하거나 슬픈 시간들에 정신질환이라고 이름 붙이면 모두가 그녀를 폐인, 더 심하게는 이물질이나 죄인 보듯 했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보고 편견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린 세상. 그런 말들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답은 일관되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 썼다고, 퍽이나! 가서 듣는 얘기도 뻔하지.”

 그녀는 자신의 충동에 이름이 붙는 것 자체를 피하려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단언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무슨 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순간을 상상했다. 타인은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은 누군가에게 동정을 얻기 쉽지 않으며 말하는 순간, 그녀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팔이나 다리에 깁스를 하면 도와주던 사람들도 울적한 표정을 지은 그녀를 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갈 터였다.

 “알지만 그렇게 되는 것보다 아예 모르는 것이 나아. 나중에 결혼이라도 하려고 보니 이런 것들 것 문제 삼아서 날 흉보고 그러면 네가 책임 질 거야?”

 오래 전의 술자리에서 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런 것 마저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멍청할 정도로 미친 소리를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취하지도 못했다. 말없이 술을 마시는 모습에 그녀는 처량히 웃을 뿐이었다. 서른이 되어가자 그녀는 유독 결혼에 민감한 것도 있었다. 결혼 평균 연령이 점점 늦어진다는 이야기나 결혼 건수가 줄어든다는 뉴스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고, 내 주변에서도 유일하게 결혼을 상상하는 그녀였다.

 그래도 너를 위해서… 아니면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를 위해서, 힘들겠어?

 이렇게 말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아니,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벌써 취했어?”라며 빈정댔을 것이다. 어느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진이랑 연락이 안 돼서, 혹시 얼마 전에 만난 적 있어?”

 그녀의 친구들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연락을 해온 것은 얼마 전이었다. 나는 꽤나 가까운 친구이자 같은 동네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걔 남친 생기고 나서는 억지로 피했지. 괜히 내가 연락했다가 어색한 상황이 생기면 좀 그렇잖아? 나도 엮이기 싫은 데다가 유진이도 자기 연애가 있을 테니까.”

 “그렇네… 알았어, 그래도 혹시 연락 오면 말해줘.”

 당시에도 2주가량 연락이 되지 않긴 했다. 그 시작은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며 한동안 바쁠 것 같다는 카톡을 받은 이후였다. 사생활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성격도 알았던 나는 정말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도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람으로만 바라봤는데 그것이 정말 좋았다. 그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데이팅 어플을 뒤적이다가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잘 지내겠지, 하다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아주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고양이였다. 그리고 보낸 순간 1이 사라졌다. 답은 없었다.

 거하게 취한 날이면 서로의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으므로 가는 그녀의 집 근처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무슨 일 있어?” 하며 보낸 메시지의 1도 바로 사라졌지만 30분이 넘도록 답이 없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하는 그녀였지만 카톡 연락에는 어떻든 답장을 하던 그녀였다. 부스스한 머리는 검은 모자로 푹 누르고 대충 셔츠 하나를 걸치고 나갔다. 버스를 타기엔 너무 가까웠고 걷기엔 조금 귀찮은 거리였다.

 10월이 다 되어가니 7시에도 어둑어둑해서 가로등이 반짝였다. 그녀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연락처를 열어봤으나 이름으로만 저장되어서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확률이 높아 보이는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수는 어렴풋이 나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지희는 한 달 전에 만난 술친구였으며, 지석은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시도했다가는 그녀에 대한 걱정보다 수치스러움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되어 걸음을 재촉했다.


 훨씬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층수를 대충 세어봤는데 그녀의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8시가 안 되어서 그녀가 술을 마시러 가기에도 조금 이른 시간, 근처 편의점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집에서 가장 빠르게 나오는 길목이었다. 한참 동안 점점이 울리는 신호를 들으며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없었다. 나처럼 검은 모자에 칙칙한 옷차림과 묵직한 가방을 메고 나가는 남자나 이제 막 퇴근하는 듯한 여자, 맥주와 과자를 하나 사서 올라가는 사람과 학원 차량에 올라타는 아이들이 보였다.

 “… 음성 사서함으로…”

 결국 나는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전화를 3번이나 걸었는데 받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잠금을 풀고 1시간 반이 넘도록 뭔가 할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데다가 노크하고 잘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설령 애인과 중요한 일을 치르고 있다 하더라도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녀의 호수를 누르고 호출을 눌렀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다행히 무거운 가방을 들고 빠져나오는 사람과 엇갈리며 급히 들어올 수 있었다.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했으나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중이었기에 4층으로 나는 곧장 뛰어올라갔다. 텅 빈 계단을 타고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도착하면 작은 복도가 보이는데 그 끝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며 다가갔다. 문에 가까워질수록 신호를 따라 진동음이 들렸다. 내쉬는 숨과 걸음걸이와 신호가 뒤섞이며 점점 커졌고 나는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진동이 여전히 문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은 순간, 통화음을 끊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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