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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그러진 심장을 펴라 : 돈키호테의 광기와 통찰

수피와 불교, 그리고 모든 종교가 말하는 ‘건너감’의 지혜

by 김희우

고대 종교들은 모두 ‘건너감’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유대교의 ‘유월절(Passover)’은 히브리어 ‘페사흐(pesach)’에서 유래된 단어로, 구약성경 『출애굽기(Exodus)』에 기록된 ‘넘어가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수피들의 ‘파나(Fanā)’는 자아를 건너가는 과정을 가리키며, 불교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가자, 가자, 넘어가자”라는 의미로,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피안, 彼岸)으로 건너감을 말합니다. 왜 모든 위대한 가르침은 한결같이 ‘건너가자’라고 말했을까요? 그들은 한 가지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건너가는 존재’입니다. 생명은 본래 움직임입니다. 물이 고이는 순간 썩기 시작하듯, 인간도 한 자리에 머무는 순간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지식, 신념, 가치관, 심지어 양심마저도 한 곳에 고착되면 권력이 되어 우리를 옭아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돈키호테입니다. 육십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 ‘미친 노인’의 이야기.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싸웠고, 양떼를 적군으로 믿고 돌진했으며, 허름한 여관을 성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실을 찾아 떠난 순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범한 시골 귀족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완전히 내려놓고, 새로운 길인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 좋아하는 사냥을 포기했고, 가진 것도 모두 팔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책에 미쳐 망가진 노인이었겠지만, 그의 광기 속에는 특별한 지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정한 ‘정상’이라는 틀을 완전히 부수고, 자신이 믿는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역설을 발견합니다. 모든 영적 전통은 자아를 비우라고 가르치지만, 그 비움은 결국 더 본질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돈키호테가 알론소 키하노라는 본명을 버렸을 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피들이 말한 ‘파나’의 역설이며, 모든 위대한 순례의 비밀입니다.



“쭈그러진 심장부터 쫙 펴십시오.” 돈키호테의 이 외침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수천 년 전 사막의 수피들이, 히말라야의 구도자들이, 그리고 모든 순례자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죽어갑니다. 움직일 때, 건너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이 미쳤다고요? 저는 한 편 부러움도 느낍니다. 세상을 바꾼 이들은 모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가 끝없는 파문을 만들어내듯,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발걸음이 세상을 바꾸어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An Adirondack Lake (The Trapper), 1870 by Winslow H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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