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보며 눈물을 흘릴까?

250501 종교현상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2)

by 김희우

폴 틸리히가 던진 한 가지 근본 물음은 "왜 어떤 이들은 십자가 앞에서 깊은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는가?"였다.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 힘을 똑같이 체감하지는 않는다. 틸리히는 이 점을 주목하며 "상징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그 상징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들이 처한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아무리 거룩한 상징이나 전통이라도 현실과 맞닿지 못하면 공감력을 잃기 쉽다. 가령 바티칸 제2차 공의회 이전, 가톨릭 미사가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시절이나 동유럽 정교회에서 아직도 쓰이는 '구슬라브어 전례', 그리고 절에서 이어지는 한문 독경 같은 예가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십자가의 메시지가 실제로 마음속에 살아 움직일 수 있을까? 여기서 틸리히는 수평적 차원과 수직적 차원의 통합을 제안한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현실(수평적 차원)을 무시하고 오직 '초월(수직적 차원)'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실제 고민과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다. 반대로, 현실에만 매몰되어 초월적 비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인간은 그 무게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십자가가 상징하는 무조건적 용서와 구원은 '초월'의 영역에 속하지만, 각자의 실제적 문제와 맞닿을 때 비로소 치유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상징을 제아무리 강조해도,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이 고려되지 않으면 그 힘은 반감되고 만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경청'이다.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진심으로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서만, 십자가가 담고 있는 초월적 의미가 실제 삶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다.



'깊이 들으려는 태도'가 전제될 때, 교리나 의식에 머물던 종교적 상징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치유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살아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틸리히가 말하는 종교의 본질도 결국 이 질문으로 모아진다. "어떻게 인간의 현실을 깊이 품으면서, 그 너머의 초월적 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인가?"

십자가 앞에서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단지 상징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고, 그 고통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공동체나 안내자를 만난 이들이다. 그렇기에 십자가는 '그저 종교의 언어'가 아니라, '이미 내게 주어진 선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깊이 듣는 태도'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종교적 상징—특히 십자가가 전하는 무조건적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가 삶과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그 사이를 잇는 공감과 경청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틸리히가 말한 현실의 차원과 초월의 차원이 맞닿는 자리이며, 그곳에서 참된 치유와 변화의 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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