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가

250506 심층심리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2)

by 김희우

토마스 아퀴나스는 흔히 ‘엄격한 논리와 교리’를 상징하는 중세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하늘의 영역과 인간 무의식이 서로 교차하는 ‘비합리적 차원’을 과감히 포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칼 융의 심층심리학과 만난다.



칼 융은 집단 무의식에 자리한 신화적 원형(Archetype)들이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천사와 악마 개념을 단순 도덕의 틀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내부의 복합적 에너지—예측 불가한 충동, 숨겨진 상처, 황홀감—이 어떻게 ‘계시’로 이어지는지를 주목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그가 “별과 행성의 움직임, 생물학적 욕망, 천사‧악마까지도 계시의 작용 범주에 넣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나 토마스가 강조한 핵심은 ‘계시란 선악만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심리‧우주적 스펙트럼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 거대한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 ‘탁월한 상상력(imagination)’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즉,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신호를 해석하는 창구가 바로 상상력이라는 뜻이다.



이 상상력은 결코 허황된 공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내면의 다양한 욕망,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껴안고 해석해내는 힘이다. 그러므로 “착하게 살면 된다”는 식의 단편적 태도로는 우리의 영혼을 온전히 돌보기 어렵다. 사람 안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악마적 충동과 외면된 본능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상상력이야말로, 이런 복잡한 에너지를 억압하지 않고 통찰과 치유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와 칼 융이 공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성의 빛만으로는 인간 경험을 완전히 해명할 수 없으며, ‘선악의 경계’를 넘어서는 무의식을 제대로 살펴봐야 진정한 계시가 우리 안에 깃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길을 열어 주는 열쇠가 상상력이다.



오늘날 복잡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단순한 규칙이나 교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통찰은 이렇게 말해 준다. “계시는 상상력이 활짝 열린 자리에서 더 선명히 드러난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 거룩함과 세속성은 서로 만나 새로운 통찰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학자, 예언자, 탐구자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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