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질문에 대하여

250617 심층심리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1)

by 김희우

우리는 종종 삶의 표면에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 사회적 역할이라는 '페르소나'에 갇혀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보편적인 무의식의 흐름, 즉 원형적 흐름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의 자아를 초월하는 '객관적 정신'의 작용이며, 꿈, 신화, 종교 상징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나 사회적 자의식에서 벗어나, 이 원형적 흐름을 인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진정한 자기 이해의 시작이다.



아돌프 켈러와 칼 융의 관계는 이러한 깊은 내면의 탐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시다. 켈러는 융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융의 분석심리학이 자신의 진정한 소명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특히 켈러가 꾼 꿈에서 융이 자신의 고향 근처, 즉 켈러의 내면 깊이 자리한 '자연신'의 상징 세계를 '구입'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융의 사상이 켈러의 무의식에 깊이 침투하여, 켈러로 하여금 자신의 기독교적 정체성 안에 '이교적' 요소들을 통합해야 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했음을 상징한다. 켈러는 이 경험을 통해 낡은 신학적 틀에 갇힌 삶이 아닌, 새로운 질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자 했다.



우리는 켈러처럼 우리 삶의 표피적인 문제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질문이 멈춰 있는 삶을 살아가며,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삶의 객관적인 흐름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켈러의 고백처럼, 우리 내면에 요청하는 바를 듣기 위해 열려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질문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서,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를 나 자신에게로 다시 이끌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상징들과 현상들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용기 있는 태도다.



켈러는 융을 "라인강의 개헬스톤 같다"고 표현하며, 융의 영향력이 자신의 삶에 깊고 단단하게 자리 잡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다이몬', 즉 고유한 사명을 좇아 자신의 진정성 있는 길을 찾아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융의 깊은 통찰을 존중하되, 그에게 완전히 복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려는 주체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 역시 타인의 지혜를 존중하되, 결국은 우리 자신만의 질문과 씨름하며 삶의 본질을 찾아나가야 한다. 오래된 질문들이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할 때,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질문 속에서 삶의 카이로스, 즉 의미 있는 '때'가 도래하고,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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