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왜 늘 ‘영혼의 고향’으로 불릴까?

251016 샤머니즘과 생활종교(1)

by 김희우

Out of India: Romantic Orientalism about the Sources of Shamanism

인도로부터: 샤머니즘의 근원에 대한 낭만주의적 오리엔탈리즘


19세기 낭만주의적 오리엔탈리즘(Romantic Orientalism)은 계몽주의의 냉정한 이성 비판을 넘어 ‘동방(특히 인도)’을 영적 근원으로 재발견하려는 흐름이었다.


서구는 인도를 ‘문명의 기원’, ‘영성의 원천’으로 상상했고, 이는 “Out of India”, 즉 모든 종교가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로 정착했다. 샤머니즘도 이 담론 속에서 ‘인도 영성의 타락한 잔재’로 재해석되었다.

슐레겔은 “샤먼 = 사마네안(Samanean)”이라는 어원을 제시하며 샤머니즘을 인도 불교와 철학의 후손으로 재정의(‘언어학적 비교’ → 종교학적 비교의 원형.) → 막스 뮐러 등으로 이어져 19세기 비교종교학의 기본 방법론이 됨(막스 뮐러의 언어학적 비교방법이 오리엔탈리즘적 신화를 ‘학문적 객관성’으로 포장).


조롱 비하 → 매혹(신비)으로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타자를 자기 욕망의 거울로 삼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었다(서구가 자기 결핍(영성, 감정)을 투사한 ‘상상의 동방’의 산물).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샤머니즘의 인도 기원설’은 점차 언어학적·백과사전적 정설(canonical theory)로 고착되었고, 20세기 초에는 학문적 비판이 등장했지만, 이미 사전·대중문화·영성 담론 속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상태였다.


19세기 담론은 20세기 영성운동(New Age)에 흡수되어, 요가·탄트라·샤머니즘의 혼합 담론으로 이어졌다.

(Sergei Shirokogoroff)는 불교와 샤머니즘의 ‘혼종성(hybridity)’을 인정하며 “가능한 한 구체적 민족지 자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하나의 기원’이 아닌 상호작용의 산물로 해석세르게이 시로코고로프했다. 그러나 여전히 낭만주의의 ‘언어적 인도 기원론’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인류학자 베르톨트 라우퍼(Berthold Laufer)는 1917년 “인도 기원설의 유령이 아직도 불쌍한 샤먼을 백과사전 속에서 괴롭힌다.”라고 비판 하였지만, ‘인도 기원설’은 사전·학계·영성산업을 통해 계속 재생산되었다.


Romantic Naturphilosophie and Indigenous Spirituality

낭만주의적 자연철학과 토착 영성

샤머니즘을 동양(인도) 기원과 연결해 추측하지 않고, 그 자체의 토대에서 살펴보려 한 최초의 학자는 대학 교육을 받은 시베리아 토착 지식인 도르지 반자로프(Dorji Banzarov, 1822–1855)였다. 그는 카잔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대학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이중 배경 덕분에 시베리아 영성에 대한 토착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카잔대에 있던 1846년, 반자로프는 석사논문 <검은 신앙; 혹은 몽골의 샤머니즘>을 썼는데, 이는 시베리아 및 내륙 아시아 샤머니즘에 대한 최초의 비교적 일관된 개요였다. 이 글은 서로 연관된 두 집단, 부랴트와 몽골의 신앙을 다룬다. 그는 계몽주의와 동시대 낭만주의 오리엔탈리즘의 연구를 토대로 하면서도, 토착 시베리아 영적 실천을 “티베트 불교의 사생아적 변형”이라 치부해온 선행 연구자들을 비판했다. 그 대신 시베리아·몽골 샤머니즘의 토착적 근원을 지목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적어도 몽골의 경우 이른바 샤머니즘이 불교나 다른 어떤 신앙에서 비롯되었을리 없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임이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몇 가지 미신과 주술, 샤먼들의 협잡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몽골의 ‘검은 신앙’은 많은 고대 종교 체계들이 형성된 바로 그 원천, 곧 외적 세계(자연)와 내적 세계(인간의 영혼)에서 생겨났다.” 예컨대 반자로프에게서, 인간 정신은 지역의 풍경(자연)을 먹고 자라며 샤머니즘을 낳는다는 것이다.


반자로프는 자연철학(Naturphilosophie)—특히 훔볼트(A. v. Humboldt)—의 영향을 받았고,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연관”에 주목했다. 그는 민족지 일반화(터키·핀·몽골 등 북아시아 신앙을 마구 섞는 방식)를 비판하며, 집단별 미묘한 차이와 뉘앙스를 세밀히 분리해 연구할 것을 주장했다(오늘날의 반-보편주의/반-성급한 비교의 선구).

그러나 반자로프는 석사 논문 이후 학문을 확장하지 못했고, 문화적 괴리감 속에서 연구를 중단, 요절했다.

발트계 독일인 과학자 알렉산더 폰 붕게(1826, 알타이 조사)는 샤먼을 “숙련된 사기꾼”이라 부르면서도, 이상하게도 샤먼 북소리에 본능적으로 끌려 식물·광물 채집 목적에서 자주 벗어나 토착 의례를 보러 다녔다. 현지 규칙에 따라 치유 행위 대가로 모피 선물을 받고, 알타이 샤먼과 상호 ‘진맥’/점복 교환을 경험(양의 견갑골 점복)했다. 이 사례는 계몽주의적 회의 + 낭만주의적 매혹 + 현장 상호작용이 한데 얽힌 과도기적 탐험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낭만주의 탐험가들은 계몽주의의 회의적 시선을 넘어, 샤머니즘을 자연과 인간 정신의 교감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중 페르디난트 폰 브랑겔은 샤먼을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적 현상”으로 규정하며, 시베리아의 음울한 자연이 인간 내면의 신비한 열망을 자극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훔볼트의 자연철학과 알렉산더 폰 분게의 현장적 경험—샤먼 의례에 매혹되어 직접 참여했던 태도—에서 이어진 것이다. 브랑겔에게 샤머니즘은 미신이나 병리가 아니라, 자연이 인간의 영혼 속에 울려낸 고딕적 숭고(종교적 감수성, 공포, 엄숙함, 장엄함, 초월성이 뒤섞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즉 정신의 예술적 현상이었다. 이로써 낭만주의는 샤먼을 미신에서 신비로, 병리에서 심리로, 조롱에서 이해로 옮겨놓았다.


19세기 중엽의 낭만주의 탐험가들은 샤머니즘을 미신이 아닌 인간 정신의 예술적 표현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벨랴프스키는 샤먼을 속임수의 달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존경하는 창조적 인물로 묘사했고, 브랑겔은 그들을 “심리적 현상”이라 불렀다. 크리보샤프킨은 샤먼 소질을 지닌 토착 청년들을 푸시킨·레르몬토프의 비극적 시인에 비유하며, 그들의 황홀경을 “꿈같은 내적 몰입의 상태”로 해석했다. 이들의 묘사에는 분게(von Bunge)에서 이어진 ‘현장적 매혹의 감수성’과 헤르더와 셸링으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철학이 깔려있었다.


헤르더는 샤먼의 광기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의 승리를 보았고, 셸링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신적 유기체로 보았다. 즉, 낭만주의는 샤머니즘을 통해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혼의 창조성을 발견했다.

결국 샤머니즘은 이 시기 ‘토착적 예술’이자 ‘정신적 자연철학’으로 격상되었다. 이는 종교를 병리로 환원하던 계몽주의에서 벗어나, 종교적 체험을 정신·예술·자연의 통합적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인류학적 전환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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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리스(독일 낭만주의 시인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의 필명)에서 출발한 낭만주의의 자연철학은, 19세기 미국 트랜센덴털리스트들에 의해 ‘자연-정신의 합일’이라는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으로 발전했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Blue Flower)은 인간 내면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영혼의 갈망’을 상징했고, 그의 자연관은 자연·인간·예술이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된 순환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이후 Emerson, Thoreau로 이어지는 자연 = 신성한 생명. 인간과 신의 매개자(에머슨, 소로) 관념의 계보로 이어졌다. 특히 소로는 원주민의 자연적 삶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보았다. 그에게 문명인은 “집에 갇힌 존재”였지만, 인디언은 “자연의 진정한 거주자”였다. 이 시선은 이후 생태주의적 영성과 신샤머니즘(neoshamanism)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결국 낭만주의와 초월주의는 자연의 신성화(sacralization of nature)를 통해, 샤머니즘의 ‘자연-정신 일체’ 감각을 서구 지성의 언어로 번역한 철학적 전환점이었다. 이 흐름 속에서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 그리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신의 흔적을 감지하는 영적 존재로 재구성되었다.


오늘날의 유니테리언 보편주의 교회(Unitarian Universalist Church)는 19세기 초월주의에서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대 미국의 “마음-몸-정신(mind–body–spirit)” 문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 교단은 샤머니즘·원주민 상징·이교주의(paganism) 등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며, 현대 미국 중산층 지식인들의 ‘통합 영성’ 모델로 자리 잡았다.


비슷하게, 19세기의 셰이커 교도(Shakers) 역시 인디언 영혼으로부터 노래와 설교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원주민 상징을 수용했다. 이처럼 미국 종교사에는 “토착 영성의 차용과 신성화”의 전통이 있었고, 그 흐름은 20세기 이후의 뉴에이지·생태 영성으로 이어졌다.


미국 낭만주의 작가이자 민속학자, 신비주의자였던 찰스 고드프리 랠런드 (Charles G. Leland, 1824–1903)는 원주민 설화와 마법적 상상력을 통해 미국인의 영혼을 재정립하려 했다. 그는 독일 유학(하이델베르크·뮌헨) 중에 낭만주의 철학을 흡수했고, 유럽의 민속적 신비주의(Folkloric Romanticism)를 미국 토착 신화(Native American myth)로 옮겨왔다. 랠런드는 미국인들이 원주민 신화와 샤머니즘 속 자연에 대한 영적 태도(spiritual attitude to nature)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미국적 정신의 일부’(an integral part of the Americans) 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독일인이나 다른 유럽인들과 달리, 이주민(newcomers) 인 미국인들에게는 그러한 자생적 토양(indigenous soil) 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인디언을 “영원한 영성의 전달자(carrier of timeless spirituality)”, “자연과 친밀한 존재”로 묘사했으며 자신을 미국 원주민의 땅에 근거한 지혜(earth-based wisdom)를 전하는 메신저로서 자신을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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