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6 샤머니즘과 생활종교(2)
Our Early Ancestors: Finnish Ethnography and Siberian Native Spirituality
우리의 초기 조상들: 핀란드 민족지학과 시베리아 원주민 영성
핀란드의 언어학자이자 민속학자 마티아스 알렉산데르 카스트렌(Matthias Aleksanteri Castrén, 1813–1853)은 찰스 랠런드처럼 자기 민족의 토착 신화와 영성을 탐구하고, 핀란드인들이 자신들의 “고대의 뿌리(native soil)”에 정착하도록 돕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민속학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민족적 자기확인(self-anchoring)의 수단이었다. 그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을 인도로부터 유래했다고 보는 “오리엔트 기원설(Oriental Connection)”을 거부했다. 대신 “시베리아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영적 토양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그는 시베리아 출신의 토착 지식인 도르지 반자로프(Dorji Banzarov)와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카스트렌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핀란드 민족주의의 지식적 건설자였다. 그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인들에게 “우리는 고유한 뿌리를 가진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핀우그리아계(Finno-Ugrian) 언어와 신화를 비교하며, “핀란드인의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our early ancestors)”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의 대표작인 <핀란드 신화에 대한 강의(Vorlesungen über die Finnische Mythologie, 1853)>에서는 핀란드와 사미(Sámi), 한티(Khanty), 오스티아크(Ostyak) 등 시베리아 종족의 신화를 연결시켰다. 나아가 그는 투르크·퉁구스(에벤키)·만주족까지 핀우그리아 언어의 먼 친척이라 주장하며, 핀란드인의 기원을 알타이(Altai)까지 확장시켰다.
현대 인류학자 유하 펜티캐이넨(Juha Pentikäinen)은 “카스트렌은 핀란드인의 친척을 너무 많이 만들어냈다”고 농담했지만, 이러한 ‘언어-신화적 연결’ 시도는 핀란드인들에게 ‘우리는 아시아적 기원을 가진 고대 민족’이라는 상상력을 제공했다.
카스트렌 이후, 핀란드 인문학에서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신화·언어·신앙을 탐구하는 민족지 연구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850년대부터 1920년대 볼셰비키 혁명으로 길이 닫히기 전까지, 카르얄라이넨, 칸니스토, 도너, 레티살로 같은 학자들은 시베리아를 탐사하며 핀란드인과 한티·네네츠·에벤키 등 핀우그리아계 민족 사이의 정신적·문화적 연속성을 찾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현지의 노인, 설화꾼, 샤먼 같은 ‘좋은 스승’을 찾아가 배웠고, 그들의 연구는 대부분 독일어로 출판되어 20세기 초 유럽 학계가 구축한 ‘유라시아 샤머니즘’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이 자료들은 나중에 미르체아 엘리아데(M. Eliade)가 보편적 샤머니즘 개념을 정립할 때 핵심 자료로 사용되었다.
카이 도너(Kai Donner)는 낭만주의적 현지 탐사의 대표적 인물이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시베리아에 머물며 한티와 에벤키 사람들을 연구한 그는, 처음엔 러시아 문화에 물든 원주민들을 보고 실망했지만, 곧 그들의 전설·언어·샤머니즘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점차 현지인처럼 생활하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들처럼 옷을 입고, 그들처럼 먹었으며, 그들의 언어를 말했고, 완전히 그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도너는 이러한 생활을 단순한 과학적 관찰이 아니라 사랑과 몰입을 통해 얻는 살아 있는 지식”이라 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문명인이 원시인의 영적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에는 큰 매력이 있다. 그때 얻게 되는 지식은 살아 있고 현실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샤머니즘을 미신이나 속임수가 아닌 ‘살아 있는 영성’으로 재해석한 전환점이었다. 도너에게 샤머니즘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함께 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세계였다. 이러한 감수성은 후대 인류학의 참여관찰 방법과, 유럽 학계의 ‘유라시아 샤머니즘’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너(Kai Donner)는 자신이 목격한 샤먼의 세앙스(shamanic séance, 주술 의례)를 시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저녁은 고요했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불은 서서히 꺼지고, 오래된 숲의 나무들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나는 문명인의 자의식을 모두 잊고, 기독교나 다른 어떤 가르침도 떠올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보고 듣는 것에 어린아이처럼 매혹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린아이가 된 듯 느꼈고, 어린 시절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상상했다. 물과 공기 속에는 신비로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가득하여,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의 운명과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고 느꼈다. 손대지 않은 자연과 그 무한한 침묵 속에서, 나는 신앙이 세계의 모든 것에 닿는 그 전통적 신비에 휩싸였다.”
수년 뒤 도너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여전히 그 “신비로운 세앙스”의 마법 아래 있었으며,그 체험을 통해 “이 숲의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썼다.
그의 뒤를 이은 마지막 세대의 낭만주의적 민속학자는 우노 홀름베르그(Uno Holmberg, 1882–1949)였다. 홀름베르그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공감을 비교신화학적 분석 체계로 전환했다. 그는 ‘세계수’나 ‘세계산’ 같은 상징을 통해 보편적 종교구조(archetype)를 제시하며, 이 사유는 엘리아데에게 계승되어 ‘유라시아적·보편적 샤머니즘’ 개념으로 발전했다.
Wilhelm Radloff Pioneers Shamanism Studies
빌헬름 라들로프 샤머니즘 연구의 개척자
라들로프는 언어학자이자 민족학자로서 샤머니즘을 문학적 상상에서 학문적 관찰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라들로프는 이전 세대의 낭만적·언어학적 상상을 넘어, 실제 현지 관찰에 근거한 체계적 샤머니즘 연구를 개척했다. 그는 샤먼의 노래나 주문을 수집하려 했지만, 그들의 “비밀을 지키는 태도”를 통해 샤머니즘이 ‘은폐와 신비의 체계’임을 인식했다.
또한 알타이 지역의 정화 의례를 통해 샤먼의 황홀경(ecstasy)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 현상이 “연극”이 아니라 실재적이고 정서적으로 전이되는 경험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묘사는 훗날 엘리아데가 ‘황홀경의 고대 기법(Archaic Techniques of Ecstasy)’이라 명명한 황홀경의 기법’(1964)으로 이어졌다.
라들로프는 “샤머니즘의 세부를 기술하면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샤머니즘이 일관된 교리(doctrine)가 아니라 상황적·관계적 실천(practice)임을 의미한다. 즉 그는 민속 신앙의 불균질성과 변이성 자체를 샤머니즘의 본질로 인식한 첫 학자였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말 이전의 체험- 살아있는 관계의 세계이기 때문에 ㅡ
비의적, 체험적, 관계적 <-> 교리적, 문헌적, 보편적, 초월적)
라들로프는 두 번의 우연한 샤머니즘 목격 외에는 직접적 관찰이 거의 없었지만, 현지인들에게서 얻은 “암시, 전설, 동화, 이야기, 노래를 통해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영성을 재구성했다. 또한 “샤먼은 불교·기독교·이슬람의 성직자들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하며, 샤먼을 자기 민족의 윤리적 이상(ethical ideals)을 구현하는 존재로 평가했다.
186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독일·러시아·시베리아에서 출판된 라들로프의 저작들은 샤머니즘을 서구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통합적 주제로 정립하는 데 필요한 지적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그의 저서 <시베리아에서(Aus Sibirien, 1884)>는 샤머니즘을 고정된 교리로 보지 않고, 즉흥적이며 지역적으로 변형되는 유동적 체계로 이해하였다. 라들로프는 샤먼을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과 다르지 않으며, 자기 민족의 윤리적 이상을 구현한 존재”로 평가하며, 샤머니즘을 문명과 동등한 종교적 영역에 위치시켰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율겐(Ülgen) 세앙스’라 불리는 샤먼 의식을 서구 학계에 처음 완전한 형태로 소개한 것이다. 알타이 지역의 한 샤먼이 자비로운 신 율겐에게 제의용 말을 희생하며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장면에서, 샤먼의 영혼은 제물의 영혼과 함께 하늘(상층 세계)로 올라가 신에게 도달한다. 이 기록은 러시아 선교사 바실리 베르비츠키의 자료를 번역한 2차 자료였지만, 이후 전 세계에서 ‘전형적 샤먼 의례’로 정전화(canonization)되었다. 20세기 들어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샤머니즘을 “천상으로의 영적 비행(heavenly flight)”이라는 고전적 원형으로 정의했다. 이로써 한 지역의 제의가 ‘보편적 샤머니즘’의 모델로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