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마음 -인지종교학의 주제와 경향을 중심으로(2)

박종천. (2008). 철학탐구 , 24, 189-220.

by 김희우

3. 인지종교학의 중요 이슈들

1) 종교적 표상과 인지최적화효과


1. 종교는 특별한 게 아니다

파스칼 보이어는 종교를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종교적 사고나 믿음은 인간 인지 시스템이 작동하다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종교는 초월적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보통 사고방식이 살짝 ‘비틀어진’ 형태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자연성 테제*(The Naturalness of Religion Thesis)’를 제시한다. →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별도의 신비한 ‘종교적 능력’을 가정할 필요가 없고,
일반적인 인지 메커니즘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테제(thesis)란, 어떤 이론이나 글, 연구가 근거를 가지고 “이렇다”고 주장하는 핵심 명제 또는 주장 문장을 말한다. 즉, 어떤 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나 논리의 출발점이 바로 ‘테제’인데, 논문에서는 흔히 “이 글의 테제는 ~이다”라고 하면, 그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주장 한 줄을 뜻한다.

2. 직관적 존재론과 최소 반직관 개념 (MCI)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직관적 존재론(intuitive ontology) — 즉, “세상은 이렇게 작동한다”는 기본 기대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돌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 와 같은..

그런데 신이나 영 같은 개념은 이런 기본 기대를 살짝 위반(tweak)한다.

예를 들어: 신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지만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한다. 와 같은 최소한도로 반직관적인 개념(Minimally Counter-Intuitive, MCI)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오래 기억되기 쉬우며, 문화 속에서 잘 퍼진다는 것이다.


너무 비현실적이면 믿기 어렵고, 너무 평범하면 흥미가 없기 때문에 “살짝 비틀린 개념”이 가장 잘 살아남는다 — 이것이 인지최적화효과(cognitive optimum effect)다.


3. 믿음의 두 층위: 무반영적 믿음 vs 반영적 믿음

보이어와 바렛(Justin Barrett)은 사람의 믿음이 두 층위로 작동한다고 본다.


무반영적 믿음(nonreflective belief):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믿음.
예: “돌은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 없다.”
이런 믿음은 인지적 습관처럼, 별 생각 없이도 행동을 이끈다.


반영적 믿음(reflective belief): 의식적으로 숙고해서 받아들이는 믿음.
예: “신은 무소부재하다.”
즉, 신학자나 철학자가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신의 속성 같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학적으로는 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믿지만 일상적으로 기도하거나 이야기할 때는 사람들은 신을 ‘어딘가에 있는 존재’처럼 상상한다는 것이다. 즉, 무반영적 믿음이 실제 종교적 사고를 지배한다. 이 무반영적 믿음은 MCI 개념에 가까운, 즉 살짝 반직관적인 신 개념(예: 인간 같지만 초월적인 신)을 만들기 쉬워 ‘신인동형설적*신(anthropomorphic god)’ — 인간과 닮은 신 개념 — 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신인동형설적(神人同形說的)'은 신을 인간과 같은 모습이나 속성을 가진 것처럼 묘사하는 표현 방식.


4. 결론 — 인지적으로 “살짝 이상한 개념”이 종교를 만든다

보이어와 인지종교학자들의 결론은 명확하다. “종교적 개념이 기억되고 퍼지는 이유는, 인간의 인지 시스템이 그런 ‘살짝 반직관적’ 개념에 가장 잘 반응하기 때문이다.”

즉, 종교는 인간 마음의 인지적 ‘설정값’이 낳은 결과다. 다만 이런 이론은 종교적 개념과 비종교적 상상(예: 요정, 마법, 슈퍼히어로)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왜 어떤 개념은 종교로 발전하고, 어떤 것은 단순한 상상으로 남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인지종교학은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를 초월적 체험이 아니라 ‘살짝 반직관적인 인지 구조의 산물’로 설명한다. 종교는 인간 마음이 만들어내는 기억하기 좋은, 전파되기 쉬운 패턴일 뿐이다.



2) 종교적 행위와 의례

1. 반직관적 행위와 종교적 실천

바렛(Justin Barrett)과 몰리(Brian Malley)는 인간의 마음 속 ‘인지적 표상 구조(cognitive representational structure)’가 어떻게 ‘반직관적 행위(counterintuitive actions)’—즉, 평범한 세상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를 만들어내는지를 연구했다.

예를 들어, 병이 갑자기 나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일, 신이 분노하여 비를 내린다고 믿는 일, 혹은 죽은 사람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 등은 모두 ‘반직관적 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공통적으로 ‘지향적 행위주체(intentional agent)’가 개입된 사건으로 해석된다. 즉, 사람들이 어떤 일을 의도를 지닌 존재가 일으킨 것으로 지각할 때, 그 사건은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이런 행위는 두 가지로 나뉜다.

세간적 행위주체(mundane agents): 인간이나 동물처럼 현실 속의 존재가 하는 행위.

초세간적 행위주체(supermundane agents): 신, 영혼, 조상신처럼 초자연적인 존재가 하는 행위.

세간적 존재가 초세간적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주술적 행위, 초세간적 존재가 직접 일으키는 사건은 기적(miracle)로 분류된다.


“종교적 현상을 설명할 때, 신과 인간 중 누가 ‘의도를 가진 행위자’로 인식되는지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분석하는 것이 인지종교학이 제시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이런 분석은 “종교란 무엇인가?”를 단순히 교리나 신앙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건의 원인과 행위주체를 어떻게 지각하는가*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즉, 종교적 사고는 인지적 메커니즘(의도성 감지, 행위자 추론, 원인 귀속 등)의 결과라는 점을 밝히는 접근이다.



2. 의례(ritual)의 구조적 분석

로슨(E. T. Lawson)과 맥컬리(R. N. McCauley)는 특수한 행위자(special agent)와 특수한 절차(special procedure)로 종교 의례를 구분했다.
예를 들어,

신이 직접 행위하는 듯한 의례 → 특수한 행위자 중심

사람이 특정 절차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의례 → 특수한 절차 중심

특수한 행위자 중심의 의례는 영구적 효과(예: 구원, 축복)를 갖는 반면, 특수한 절차 중심의 의례는 일시적 효과(예: 정화, 안녕)를 낸다. 바렛과 몰리는 이 구분을 보완해, 사람들이 의례를 수행할 때 ‘행위의 목적을 어떻게 인지적으로 표상하느냐’에 따라 신이나 조상신의 개입을 상정한다고 보았다. 즉,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신의 개입을 ‘직접 느끼지 않아도’, 그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신의 작용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3. 화이트하우스의 ‘종교성의 두 가지 양태’ 이론

하비 화이트하우스(Harvey Whitehouse)는 종교적 실천의 다양성을 기억(memory)의 두 형태와 연결시켰다. 그는 종교에는 ‘교리적 양태(doctrinal mode)’와 ‘이미지적 양태(imagistic mode)’라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고 보았다.


(1) 교리적 양태

자주 반복되고, 형식화된 의례 (예: 예배, 미사, 제사)

의미기억(semantic memory)에 저장되어 쉽게 잊히지 않음

논리적, 조직적, 중앙집중적 구조

지도자의 권위가 강하고, 대규모 공동체로 확산됨
→ 예: 유교 제례, 천주교 미사


(2) 이미지적 양태

드물게 수행되지만 감정적으로 매우 강렬한 의례 (예: 무속의 굿, 성령 체험)

일화기억(episodic memory)에 저장되어 개인적 체험으로 남음

내적이고 생생한 의미, 배타적 공동체, 느슨한 조직
→ 예: 무속 의례, 영적 체험 중심 집단


“교리적 양태는 반복을 통해 오래가지만, 감정이 약하다. 이미지적 양태는 강렬한 감정을 남기지만, 쉽게 확산되지 않는다.” - 하비 화이트하우스


4. 심리와 사회를 잇는 구조

화이트하우스는 이 두 양태를 심리적 기억 구조 → 행위적 실천 → 사회문화적 형태로 연결했다.
즉, 마음의 작용(기억과 감정)이 몸의 행위(의례)로 나타나고, 그것이 다시 사회의 구조(공동체, 지도력, 확산성)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교리적 양태의 종교는 중앙집중적, 대규모, 효율적 확산, 포용적 구조를 갖는 반면, 이미지적 양태의 종교는 지역적, 소규모, 느리지만 강한 결속력, 배타적 구조를 보인다. 이 구분은 종교사회학에서 말하는 교회–교파–컬트(Church–Sect–Cult) 구분과도 이어진다.


5. 평가

화이트하우스의 이론은 마음–몸–사회가 연결된 하나의 거대 통합모델이라는 점에서 매우 도전적이다. 종교적 기억과 의례, 그리고 사회적 조직 형태를 하나의 인지적 연속선 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다양한 종교사 사례에 적용하려면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있다. 즉, 이론은 정교하지만, 실제 사례에서 너무 단순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종교를 ‘마음–행위–사회’의 통합적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4. 인지종교학에 대한 비평적 전망

1. 인지종교학의 성과

인지종교학은 종교를 ‘마음의 인지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덕분에 종교를 감정이나 신비체험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보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왜 인간은 신을 믿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뇌와 인지 구조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접근은 종교학이 오랫동안 빠져 있던 해석 중심의 한계를 넘어서, 검증 가능한 가설과 보편적 설명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덕분에 종교학이 특정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벗어나, “종교 일반의 보편 문법”을 탐구하는 과학적 학문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었다.


2. 인지종교학의 한계 — 너무 단순하고, 환원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동시에 인지종교학이 가진 약점도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단순화와 환원주의다. 즉, 종교를 단지 ‘두뇌의 산물’로만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종교만이 가진 고유한 상징성, 감정, 역사성이 사라지고, 예술이나 신화와 구분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그림도 상상력과 반직관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인지종교학의 틀로 보면 종교적 표상과 다를 바 없게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종교만의 독특한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종교를 인지적,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차원이 얽힌 복합적 체계로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뇌–마음–몸–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구조 속에서 종교를 설명.


3. 감정과 기억의 중요성

지금까지 인지종교학은 ‘인지(cognition)’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저자는 이제 감정(emotion)과 기억(memory)의 역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의 ‘누미노제(das Numinöse)’ 개념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종교적 경험을 “두려움과 매혹이 공존하는 신비의 감정”으로 설명했다. 이 감정은 단순히 ‘반직관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이성과 감정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경험이다. 따라서 인지종교학이 종교를 이해하려면, 이런 감정적·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해석학적 접근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인지가 ‘뼈대’를 제공한다면, 해석은 그 위에 ‘살과 피’를 입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4. 서구 중심주의의 문제

또 하나의 비판은 서구 기독교 중심적 모델에 대한 반성이다. 현재 인지종교학은 주로 서구의 일신교적 전통(신의 개념, 초월적 행위주체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나 불교처럼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종교에서는 이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교의 “연기(緣起)” 개념이나 유교의 “도(道)”는 초월적 신이 아니라 관계와 질서의 원리를 강조한다. 이런 개념들은 인지종교학의 “초월적 행위주체(agent)”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비(非)기독교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진정으로 보편적인 인지종교학이 될 수 있다.


5. 앞으로의 방향 — 관계적이고 구성적인 인지종교학

저자는 마지막으로, 현재의 인지종교학이 종교를 두뇌의 부산물로만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교는 단지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몸–사회–환경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변하며 구성하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즉, 종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변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지종교학은 뇌(생물학적 기반), 마음(심리적 구조), 몸(행위적 차원), 사회(문화적 맥락)을 하나의 상호작용적 시스템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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