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몸으로 사는 현대인

강의실 밖 구형찬 교수님과의 면담 2(250826)

by 김희우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비행기를 타지만, 몸은 여전히 원시인이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점을 약 600만 년 전으로 본다면, 그 이후 대략 599만 년 동안 수렵 채집 생활을 했고, 농경은 약 1만 년 전에야 시작했다. 우리 신체적 특징과 행동 양식의 대부분은 수렵 채집 시대에 진화했다. 그 이후로는 행동 가소성을 통해 조금씩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종교학자 구형찬 교수님은 마다가스카르의 미케아족을 직접 방문해 연구했다. 미케아족은 외부와 거의 접촉이 없는 현대 수렵 채집 부족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원래 수렵 채집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정주민으로 살다가 숲으로 들어갔고, 대부분이 사망하고 숲 생활에 적응한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현장에서 관찰한 결과, 유전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집단인데도 반농경·반목축 생활을 하는 판다라 부족과 수렵 채집 미케아족의 행동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같은 유전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생태 환경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증거였다.


구 교수님이 소를 잡아 나눠줬을 때, 수렵 채집인들은 즉시 다 나눠 먹었고 농경 부족은 보관했다. 수렵 채집인들은 즉시 다 나눠 먹었는데, 이는 평화로운 성품 때문이 아니다. 보관 기술이 없어서 나눠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발견은 아이들의 행동이었다. 수렵 채집 아이들은 잘 웃지 않고 우울해 보였다. 하지만 병리적 상태가 아니다. 사바나나 관목 건조 기후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고 사냥감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해야 생존에 유리하다. 아이들이 막 뛰어놀며 에너지를 쓰면 안 된다. 대사 시스템이 에너지 절약형으로 최적화된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반면 농경 부족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활발했다.


수렵 채집 아이들이 몇 킬로미터를 걸어와 판다라 부족 학교에서 놀곤 했다. 구 교수님이 심부름을 시켰는데 아직도 놀고 있길래 물었더니 "갔다 왔어요"라고 답했다. 일반인이라면 탈진할 거리를 순식간에 왕복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차별을 받았다. 농경민 아이들이 "감자나 먹는 애들", "미개하다"며 발로 밟았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사회적으로는 배제당했다.


미케아족은 숲 중앙에서 쫓겨났다. 판다라 같은 반농경 부족이 바오밥 숲에 불을 질러 농지를 확보한 뒤, 수렵 채집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씌웠다. 숲 중앙에는 사냥할 동물이 있지만, 경계로 밀려난 주변부에는 동물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배고픈 상태다. 이들은 물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바부라는 땅속 뿌리가 약 90%가 수분이라 충분하다. "물을 마시면 죽는다"는 전승도 있다.


19~20세기 초에 주요 수렵 채집인 연구가 종료되었다. 이들은 우리 한국 무속에 익숙한 강신무 세습무 이런 전통도 있고, 조상 숭배, 시신 처리 방식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과거 민족지 자료는 있지만 수집 방법론을 알 수 없어 신뢰성 판단이 어렵다. 현재 필드 연구가 가능하다면 종교학과 진화 인류학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수렵 채집인을 연구하면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말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 살지만 여전히 수렵 채집인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교수님께서 종교학을 선택한 이유


종교학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화 현상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도 알아야 하고, 왜 그런 효과가 생기는지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시체와 살아있는 것을 구분한다. 곤충인지 아닌지도 배우지 않아도 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빅데이터로 패턴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인간의 뇌와 신체가 정말로 그렇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법,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연구할 수 없다. 협업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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