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강의실 밖 구형찬 교수님과의 면담 3(250825)

by 김희우

학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이 하나 있다. "교수님, 뭐가 궁금하세요?"

이 질문 앞에서 대부분은 말을 잃는다. 자기 이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 학파가 왜 옳은지는 열변을 토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궁금해서 그 연구를 시작했는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문제의식이 사라진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그냥 자기 라인을 지키고, 후임을 등록시키고,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조직의 생존 게임이 될 뿐이다.

진화심리학자는 진화심리학이 인정받기를 원하고, 공진화 연구자는 공진화가 주류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건 학자가 아니어도 가질 수 있는 욕망 아닌가?

진짜 학자라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어떤 행동은 성공하고 어떤 건 실패하는가? 왜 어떤 문화는 살아남고 어떤 건 사라지는가?"

질문이 선명하면 방법은 자유롭다.

인문학이 필요하면 인문학을 하고, 수학이 필요하면 수학을 한다.

중요한 건 질문이 해결되는 것이지, 어느 학파의 깃발을 드는가가 아니다.







막스 밀러를 아는가? 종교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종교학자들 중에서도 막스 밀러가 정확히 무엇이 궁금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그의 말을 인용할 뿐이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이 문장의 맥락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막스 밀러는 비교언어학자였다.

독일 출신으로 인도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 언어를 배우며 한 가지 사실에 꽂혔다.

유럽 언어와 인도 언어 사이에 묘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

그는 궁금했다. 인간은 어떻게 언어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영어 쓰는 사람은 영어를 쓰고, 인도 사람은 인도 말을 쓴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말을 잘한다.

인간은 누구나 언어를 구사한다. 그렇다면 이 능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가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어를 1도 모른다." 영국인들에게 셰익스피어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강연장이 술렁였다.


막스 밀러는 말을 이었다. 셰익스피어가 대문호인 건 맞다. 영어를 잘 쓰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영어만 안다. 괴테의 말처럼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의 언어 능력 자체에 대해서 셰익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면, 종교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스 밀러가 본 세계는 이랬다.

인류는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종교를 믿는다.

영국에는 믿음 좋은 기독교인이 많다. 산을 옮길 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인류의 종교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 종교만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학 입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이 가능하다면, 과학으로서의 종교학도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막스 밀러가 비교를 최고의 방법이라고 본 게 아니라는 점이다.

19세기 당시, 문화와 언어를 연구할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이 비교였을 뿐이다.


당시 학문의 상황은 이랬다.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세계 곳곳에서 자료를 가져왔다.

식민지를 경영하고 여행을 하며 온갖 유물을 수집했다. 그걸 박물관에 전시하려니 분류 기준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준이 없었다.


톰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선사시대 유물을 전시해야 하는 직원이었는데, 도무지 기준을 정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그냥 재료로 나눴다. 돌, 청동, 철.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나중에 고고학적 증거를 보니 이게 시간 순서와 일치했다. 대박이었다.


린네라는 생물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식물을 분류할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수술 개수로 나눴다.

2개, 3개, 5개 이상.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게 하기 쉬워서였다. 직관으로 분류한 것이다.


학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완벽한 방법론이 먼저 있는 게 아니다.

궁금증이 먼저고, 방법은 그다음이다. 중요한 건 무엇이 궁금한가, 왜 이 질문을 던지는가다.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영어만 아는 사람은 언어를 모른다. 기독교만 아는 사람은 종교를 모른다.

진화심리학만 아는 사람은 인간을 모른다.


자기 학파를 지키는 데 급급한 학자는 이미 학자가 아니다.

질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학문은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경계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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