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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널 스페이스 : 경계에 선 인간

by 김희우

2017년에 경북 안동시의 폐교 활용 진단 조사를 위해 들렀던 어느 폐교를 떠올려본다. 문을 닫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학교였고, 복도는 교실 간격마다 똑같은 창문과 문이 반복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쌓인 흔적보다 폐쇄와 방치가 만들어낸 정적이 먼저 와 닿았다. 건물 옆 숲을 스치는 햇빛이 복도 바닥에 드리우는 나뭇잎 그림자를 흔들어 놓았지만,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리미널 스페이스’ 특유의 비현실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남아 있지 않은 장소처럼 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무의미해 보이는 공간에 발을 디딜수록 내 머릿속은 그 공허를 메우려 애썼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찾으려 하고, 무의미한 환경에 직면하면 오히려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 한다. 종교학적 관점에서 미지의 영역은 두 가지 태도를 끌어내는데, 외경(畏敬)—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과 그 힘 앞에서 의지처를 찾으려는 갈망이다. 뇌과학적 측면에서도 이 상황은 단순한 공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하며 경고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전전두엽피질은 상황의 ‘의미’를 재해석해 감정을 조절한다. 낯선 장소를 걷는 동안에도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표식을 찾아내고, 그 표식이 주는 메시지를 재구성해 결국 안도감을 찾으려 한다.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느끼는 어색함은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낯섦’에서 비롯된다. 원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던 자리가 목적 없이 방치되면, 익숙해야 할 공간이 오히려 위화감을 자아낸다. 예컨대 “분명 북적였을 텐데, 왜 이렇게 텅 비었지?” 하는 의문이 불안을 키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공간에 사람이 많아지거나 작은 상호작용만 생겨도, 그런 오싹함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는 공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공포감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결국 핵심은 “이곳이 무의미한가?”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또 한편 리미널 스페이스는 ‘꿈속 공간’과도 맞닿아 있다. 마치 연극 무대의 장치가 뒤섞여 제멋대로 조명과 배경이 교차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실내와 실외의 구분이 흐려지고, 원래의 물리 법칙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기묘한 ‘무대 세트’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모습이 드림코어(Dreamcore)와 리미널 스페이스가 교차한다고 하는 지점이다. 지나치게 낯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생소하지만도 않은 그 오묘한 분위기가 오히려 우리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든다.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미 없음’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고 여기지만, 역설적으로 더 광범위한 무의미의 무대를 열어두었다. 예컨대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커지고, 세계적 재난이나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다시금 미지의 공포 앞에 서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부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극한의 스트레스조차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실제로 PTSD를 겪는 퇴역군인들도 끈질긴 의미 추구를 통해 자살 충동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결국 리미널 스페이스를 마주하며 느끼는 낯섦과 호기심은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숙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폐교 복도를 걸으면서도 문득 생각했다. “이 학교가 폐교된 뒤 목적이 사라졌다고 해서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낸다면 이미 무의미만은 아닐 텐데.” 낡은 칠판에 남아 있는 분필 자국을 살피며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 흔적들이 거창한 사명감이든 사소한 감상이든, 내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었다. 그렇게 리미널 스페이스는 제3의 의미로 채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의미’를 부정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의미’를 더 선명하게 감각할 수 있다.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길을 잃거나 침묵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의 미약함을 절감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선다. 현대사회가 이미 잃었다고 여겼던 원초적 감각—경외, 의문, 두려움, 그리고 안도—이 모든 감정은 때론 우리에게 더 넓은 인식을 선물한다. 그 인식은 곧 구체적인 실존적 의미를 추구하게 만든다. 리미널 스페이스의 기묘한 복도이든,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든, 아니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쳐오는 삶의 난관이든, 그 ‘공허’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희망’을 발견한다.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도 계속 길을 걸어가는 것—어쩌면 그 자체가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의미를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금 스스로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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