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이 맞는 죽음을 바꾸고 싶어서 장례 업계에 들어왔다
내 죽음을, 그리고 내 가족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게 내가 장례 업계에 들어온 이유다.
"왜 장례야?"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뭔가 불편한 거 아니냐고, 굳이 왜 그 업계냐고. 나는 이 질문에 수십 번 답했지만, 정작 나 스스로 제대로 정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 써보기로 했다.
정보가 없다. 어디서 알아봐야 하는지 모른다. 가족이 갑자기 떠나면, 슬픔이 가장 극에 달한 그 순간에 장례식장 앞에 서게 된다. 관, 수의, 유골함, 식사 비용. 선택지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선택지가 아니다. 모른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돈이 나간다.
처음 이 구조를 알았을 때 화가 났다.
슬픔을 착취하는 구조다. 이게 허용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죽음을 너무 멀리 두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준비도 안 한다. 준비가 없으니 정보가 없다. 정보가 없으니 그 공백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나는 다르게 죽고 싶었다. 잘 준비하고, 나다운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죽음을 목표로 삼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도 이만큼 확실한 목표도 없다. 누구나 맞닥뜨린다.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잘 맞닥뜨리는 게 맞다.
죽음을 일찍 생각하기 시작하면 삶이 달라진다.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내가 좋은 죽음을 원한다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 나를 장례로 데려왔다.
문제가 명확하면 기회도 명확하다.
대한민국 장례 시장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풀면 사람들이 죽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더 잘 준비하면 더 잘 떠날 수 있다. 그게 내가 풀고 싶은 문제다.
기회의 크기나 시장 규모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다. 그래서 장례에 내 시간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