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대한민국 국부… 민주주의∙선진국 이끌어
“우리나라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한참 전인 1981년, 사형수 김대중의 통찰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 강국이자 K-culture(문화)로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신인류’라고 칭송받기에 이른다. 산업화에 한참 뒤진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 국가로 만들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해서 ‘K-콘텐츠’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빚어낸 것은 김대중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은 감옥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탐독, 앞으로 다가올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다. 1981년 1월, 중앙정보부에서 김대중은 수사관에게 "세계가 정보화 시대로 갈 것이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뒤처져선 안 된다"고 강의하듯 설명한다. 그는 컴퓨터가 나오기도 전에 전자정부를 구상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형수가 수사관에게 미래의 세계를 조곤조곤 설명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나라 사랑은 일반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1세기 첨단산업 시대에 기술강국을 위한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면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겠다”고 자신의 신념을 펼쳐 보였다.
이후 그는 손정의와 빌 게이츠에게 자문을 구하고 정보고속도로(초고속 인터넷)를 구축했다. 2001년 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가입율을 자랑하며 정보강국으로 부상했으며 2002년 11월 ‘전자정부 기반을 완성, 12월부터 세계 최초로 전자정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김 대통령은 요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문해력)를 우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 격차)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인터넷 취약계층인 주부, 노인을 대상으로 무상 정보화 교육에 집중 투자했다. 세계가 놀란 인터넷 사용자 폭발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 김대중, 그가 굴곡의 우리 현대사에 없었다면 민주주의와 오늘의 경제선진국은 물론, 지구촌 최강자로 등장한 문화강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2024년 1월 6일, 그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은 오직 '민족애'에서 비롯되었다. 목숨을 던져가면서 그 가치를 세운 정치인이나 사람이 우리 인류사에 과연 몇이나 될까?
평생을 지치지 않고 공부하며 매일매일을 거듭나려고 애쓰던 사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서도 그렇게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의 가슴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땅에서 살다 간 사람 중에 그만큼 모진 일을 겪고 평생을 '빨갱이'로 몰려 살면서도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자를 용서하고, ‘국민화합’을 위해 일부러 고향을 멀리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그리고 노벨평화상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1998년 세계 최초 초고속 인터넷 상용화를 시작으로 IT강국을 만듦으로써 오늘의 눈부신 경제도약의 발판을 닦았다. 그 토대 위에서 2019년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 성공에 이어 지난해 6G 핵심기술을 개발,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가장 탁월한 성취다. 인터넷, 모바일 사회로의 진입은 단순히 통신수단의 진화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떤 현상도 지식정보화, IT혁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식정보화가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생활을 변혁시킨 데서 그 가치는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가 시작된 것도 김대중 정권에서다. 거리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이 보장되고, 여성들의 권익신장과 사회진출이 크게 높아졌다. 3년여의 산고 끝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탄생, 국민들은 마음대로 말할 수 있었고,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이 된 지방자치는 그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 쟁취한 것이며, "복지는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역대 정부 최초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틀을 마련해 사회안전망이 정비되었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국가가 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이 실시되었다. 복지는 시민의 권리가 되었고, 국가의 의무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또한 경제성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단 5년 만에 대한민국을 IT강국, 전자제품 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으로 올려놓았고, 수출 최대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4위, 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한류의 꽃을 피웠다.
“나는 국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정치의 기본 이념과 신조로 삼고 있다. 나는 국민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국민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것과 같은 정치자세를 경멸하며 또한 증오한다.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국민은 최후의 승리자이며 양심의 근원이다.”
오늘의 아류로 전락한 정치권이 가슴에 새기고 잊지 말아야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과 신념이다. 이런 것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국부는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설파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그는 비록 떠났지만 우리의 유산이 되어 영원히 살고 있다.
작금의 복잡다단하고 위기에 직면한 국제질서에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정치감각(순발력), 뚝심, 용기,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념, 그 누구라도 끊임없이 설득했던 그의 정치력과 미래를 꿰뚫는 통찰이 참으로 그립다.